예이츠의 종말론적 작품들을 보면 여성의 역할이 명확히 그려져 있다. 계시적 역할은 여성의 일이지, 여성이 영감을 주는 것을 (흔히 불완전하게) 해석하도록 요구받는 남성의 일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이 구분은, 「재림」과 「하룬 알라쉬드의 선물」에서 표현되어 있는데, 자동기술 원고, 꿈의 노트북, 카드 자료, 그리고 원고 자료에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환상록』의 참고자료를 거쳐 남편과 부인이 공동창출한 두 사람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1925년과 1937년 판의 나타난 『환상록』의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환상록』의 근거가 되는 환상록 서류로 알려진 자료를 보면 덜 확정적인 데, 자동기술로 채워진 노트북이나 묶지 않은 서류들, 꿈의 기록들, 카드 카탈로그, 원고초안들은 예이츠와 부인 조지가 공동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러나, 출판된 『환상록』만큼의 저자의 권위는 없겠지만, 이 서류들의 전개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예이츠와 조지가 가진 체계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의 역할을 할 것이다. 즉, 예이츠가 통상의 시간의 영역 밖으로 시간을 확장하는 것을 전경화시키는 창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은 그의 작품 속에서 본래의 역할을 하는데, 순간을 세고, 영원을 포용하고, 상징적 힘으로 울림을 만든다.
예이츠의 작품은 다시 찾은 시공과 재창조된 시공에 존재한다. 창조된 시공은 현대시대에서 음유시인의 역할을 재상상함으로써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다. 1937 년 환상록을 완성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영원성의 시간개념(일순간 인식된 모든 시간)을 반영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창유리에 쓰인 말』과 『연옥』에서 보이는 현세적인 시간과 영원한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초자연적 시간도 반영한다. 이 초자연적 시 간은 보통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보다 더 유동적이다.
예이츠는 마지막 시편에서 자신의 죽음과 화해한다. 그가 직면한 것 은 자신의 죽음이지만, 그는 죽음이 마지막이라는 인식으로 죽음을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저서 환상록에서 영혼이 재탄생을 준비할 때 “의식은 껍질(Husk, 욕망 등)에서 정신(Spirit)으로 지나가는 순간”이 죽음이라 기술한다. 죽음을 망각이라 기 보다는 이상한 시작으로 구분하는 것은, 환상록에서 상술하고 있듯이, 부분적으 로 예이츠의 시간에 대한 개념과 존재의 본성에 대한 개념과 상관이 있다. 이 접근은, 예이츠의 초기의 시간의 개념과 죽음의 시간성에 관한 개념에서 유래하며, 이것은 마 지막 시편 전편에 표현되어 있다.
큰 학자가 떠남에 따라 영문학에 대한 그의 영향과 문학도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업적 — 특히 『예이츠의 시전집』에 달린 주는 예이츠연구에 있어 필수적이고 권위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의 제자들과 동료교수들에 대한 그의 영향은 아주 중요한 멘토의 역할을 했는데, 미래의 학자들의 요청을 거절할 때에도 그러했다.
W.B.예이츠는 자신의 시대의 시인들이나 동료시인들과는 다른 시간을 구상하고 있다. 대부분은 시간을 진행하는 것이거나 은유적인 것으로 사용한다. 예이츠는, 블레이크처럼, 시간과 맞붙어서 영원성과의 관계를 다룬다. 즉, 모든 시간이 순간적으로 인식된다. 이런 견해의 차이는, 음유적, 민속적, 물리적이고 형이상학적 견해의 혼합에서 생긴 것으로, 근본적으로 그의 견해와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예이츠는 시를 쓰고 편집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시집 속의 어떤 시 모음은 대체적으로 그 책의 큰 그림 내의 서로의 소통을 보이며, 결국, 시들이 어 떤 시들과 가까이 놓였나를 검토함으로써 독자들의 그 시들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깊 게 한다. 마이클 로바티스와 춤꾼 의 마지막 4편의 시가 분명 그런 경우이며, 어려운 시기에 태어난 사랑하는 딸을 가지는 것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 고심하는 새 아버지 로서의 예이츠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