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학자가 떠남에 따라 영문학에 대한 그의 영향과 문학도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업적 — 특히 『예이츠의 시전집』에 달린 주는 예이츠연구에 있어 필수적이고 권위 있는 목소리가 되었다. 그의 제자들과 동료교수들에 대한 그의 영향은 아주 중요한 멘토의 역할을 했는데, 미래의 학자들의 요청을 거절할 때에도 그러했다.
파넬은 예이츠의 상상체계에서 주요 인물이었다. 파넬의 죽음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며, 그의 추종자들과 고국이 그를 버린 것은 주요 수사이며, 차가움으로 위장된 그의 열정적 성격은 『환상록』에서 예시한 이상적 시인상이다. 그러나 시들을 통해서 그의 모습은 계속 변한다. 한때는, 「슬퍼하라 그리고 전진하라」에서 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죽어가는 구세주의적 지도자이다. 다른 때는 (「쉐이드를 향해서」) 그 귀족은 군중에게 무시당한다. 「파넬의 장례식」에서 그는 자신의 가슴을 파먹는 의식으로 희생되었을 원형적 죽은 왕이지만, 내 주변에 파넬 옹호자들을 모으라 에서의 파넬은 이 사람들의 모임에서 늙어가는 추종자들이 찬양하는 열정적 애국자이다. 마지막으로 「파넬」에서 그는 다가오는 혁명이 실패할 것을 내다보는 선지자이다. 예이츠적 상상체계에서는, 하나의 아이콘이기보다는 예이츠의 손에 의해 파넬은 예이츠 시가 원하는 인물이 된다.
본 논문은 W. B. 예이츠의 두 소포클레스 번역극,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에 포함된 선택과 방법을 분석한다. 예이츠가 그리스 원전을 얼마나 자유롭고 자의적으로 활용하는가와 얼마나 충실하게 번역하는 가를 설명하게 위해서, 로렌스 베누티, 피터 로빈슨, 그리고 매듀 레이놀즈와 같은 학자들의 당대 번역이론과 독일의 해석학을 활용한다. 애비극장이 고전과 외국 극을 레버토리로 사용한 것도 이 극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문맥으로 다루어진다. 특히,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예이츠의 작업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가 보다 자유롭게 번역한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는 그의 친구이며 협력자인 에즈라 파운드의 번역에 영향을 받은 것이 보인다. 이 두 번째 번역을 자세히 검토하면, 보통 러처드 젭의 번역에서 출발하는 예이츠의 번역문구가 얼마나 크게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준다. 이 논문의 마지막 부분은 기형과 지하에 관한 은유법을 검토하는데, 이 번역극들에서 무엇을 다루는가와 어떻게 다루는 가(형식)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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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ts in Albright: Poetics of the Modernist and Post-Modernist (for the late Professor Daniel Albright)
이 논문은 예이츠의 시에 비추어 올브라이트가 최근에 발표한 새롭게 (포스트)모던하게 창작한 시의 시학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의 당대의 시인 대니얼 올브라이트의 시를 읽으려는 시도이다. 올브라이트는 자신이 예이츠의 영향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예이츠가 젊은 시절 블레이크의 시를 편집했던 것처럼 예이츠의 모든 시를 편집한 바 있다. 예이츠 학자로서 저자는 올브라이트의 시에서 예이츠의 반향을 들을 수 있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 포스트모던한 시들이 올브라이트 시가 보여주는 방법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5.4 혁명 중에 중국에 최초로 번역, 소개된 예이츠는 중국문학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 논문은 그중 3개의 모더니스트 문학회에 주목한다. 문학연구회는 민족주의자 예이츠와 초기시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승달시인회는 예이츠의 후기시와 하이모더니스트 예이츠를 선호한다. 9잎 시인파는 사실주의 정신,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학을 포괄하는 예이츠를 수용하려 했다. 예이츠의 시의 다양성과 풍요함뿐 아니라 중국신문학기의 다른 단계의 여러 요구와 문학개념 때문에, 예이츠는 중국 모더니즘의 구축과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이츠 연구에서 소외된 레드 한라한 스토리 읽기를 통해 초기 예이츠 문학의 면모와 이후 변화 발전하는 예이츠 시학의 뿌리를 살펴본다. 레드 한라한 스토리는 단순히 아일랜드의 전승민담과 신화를 바탕으로 민족주의자로서의 예이츠의 면모를 보여주기보다, 작가 개인의 창조적 변용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예술적 재능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W. B. 예이츠와 새뮤엘 베켓은 그 이전의 극작가들과 다른 모더니스트 극작가들이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고양이와 달』과 벳켓의 『고도를 기다리며』 속의 설화학의 독특한 기법을 밝히고자 한다. 이 두 작가는 복잡한 플롯에서 보이는 복선, 원인과 결과, 문제, 점층법, 결말 등이 없다. 이들에게 세상의 실체는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설화)로써 보여 지는 것이 라기 보다, 기다란 독백 대신 두 인물을 포개놓음으로써 내면의 자아에 대한 내면적 견해를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이 이 두 작가가 자신의 극을 극적으로 만드는 기법이다. 그러나, 각 작품에서 겉보기에 두 인물이 이어지는 사건과 무관한 말들을 주고받는 것 같지만, 그들의 말은 우리의 눈으로는 관찰하기 어려운 실체를 드러낸다. 이것이 예이츠와 베켓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묘사(설화)하는 방법인 것이다.
『켈트의 여명』 속에는 통합의 사상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저변에 깔려 있다. 그것은 주로 황혼의 이미지, 범신론, 대기억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특히 황혼의 이미지는 통합에 대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물질적인 영역과 정신적 영역의 통합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범신론과 대기억 역시 일원론적인 관점에서 통합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예이츠의 대표적인 사상인 존재통합의 사상이 뿌리 깊게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과 아일랜드는 식민이후의 분열과 내전 등의 상처를 가진 나라다. 현대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인종과 종교적 갈등의 후유증으로 내전 및 정치적 혼란을 겪어 왔다. 예이츠의 경우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이루는 시기에 영국에 호의를 보이는 측과 그렇지 않은 측간의 내전을 히니의 경우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얼스터 분규를 경험하면서 자신들의 문화의 혼종성을 인정하고, 가톨릭, 공화주의의 광신적 민족주의를 비난하면서 아일랜드를 유럽의 한 국가로 인식하려는 정신을 통해 문화적 화해를 이루려 했다.
예이츠와 엘리엇은 동시대 시인이면서도 별개의 시인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유사성이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시의 대상 표현에 있어서 “시적 숭고성”을 얻어내고 있다. 먼저 예이츠는 이를 위하여 고대의 도시 중에 하나인 “비잔티움”을 선택하는 가하면 엘리엇은 “시간”의 이동이라는 개념에 의지하고 있다. ‘숭고성’이라는 롱기누스의 정의에 어울리게 시적 표현의 탁월성과 우수성을 이 두 시인 모두 잘 보여주고 있다.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시 “황폐한 마을”에 대한 해석은 주로 시에서 드러난 향수와 저항의 두 이질적인 시어법의 관계를 시의 배경의 국적과 관련지어 진행되어왔다. 본 논문은 시에서 묘사된 오번이라는 마을이 아일랜드인가 영국인가 라는 해석적 논쟁의 중요한 맥락들을 짚어본 후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차용해 골드스미스 시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마지막 시인으로 자처한 예이츠는 꿈을 진리로 간주하며 꿈을 유달리 귀하게 여겨왔다. 그는 꿈만이 이성적 인간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내면을 투시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시인이다. 세상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얄팍한 과학지식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이다. 논자는 예이츠 시에 나타난 꿈을 네 가지 속성 즉 환상, 비전, 상상력, 계시로 구분하여 꿈의 특성을 밝혀본다. 특히 이번 논문에서는 꿈의 다른 형태인 환상과 비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이츠 시에 나타난 꿈은 단일한 의미가 아니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예이츠의 신비종교적 체험은 그가 평생을 두고 관심을 가졌던 영역이며 이를 통해 그의 독특한 세계령과 아니마 문디의 철학을 성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중에서 블라밧스키의 체험을 통해 접하게 되었으며 하트만의 소개로 개념을 이해하였고 힌두교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아카사는 예이츠의 철학과 작품세계에 있어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예이츠에게 있어 아카사는 신비의 세계를 현세와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며,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주는 형이상학적인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는 등 예이츠의 신비주의 경험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예이츠의 3번째 시집, 『갈대 속의 바람』은 그의 초기 시들을 모은 시집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집으로 평가된다. 일견하여, 제목은 단순히 낭만적인 기질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시를 읽어보면, 다순한 바람, 갈대, 자연과는 다른 것이 느껴진다. 그 이미지들은 작가가 외부의 힘과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마음과 가슴속의 변화들을 미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이미지가 한 여인, 모드 곤에 대한 감정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바람을 다루는데, 이 시들은, 바람, 갈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서 극도로 세련된 시인의 사랑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예이츠의 『파넬의 장례식과 기타 시들』(Parnell’s Funeral and Other Poems)은 다른 예이츠의 시집과 마찬가지로 이 시집에 수록된 시 전체의 배열과 개별 시의 의미를 함께 고려해 볼 때 그 시집이 지향하는 주제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앞부분에 배치된 시들은 주로 그 당시 아일랜드의 정치적인 분열과 혼란을 다루고 뒤에 예이츠의 종교적인 신념을 다룬 초자연의 노래 (“Supernatural Songs”)를 배치했다. 이 연작시에는 영과 성, 남과 여, 너와 나, 나와 신, 신과 신, 어제와 내일, 밤과 낮, 순간과 영원이 하나 되고 일체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그의 정치적 종교적인 비전인 존재의 합일(unity of being)의 또 다른 표현이며 결국 시집 전반에 제시된 갈라진 아일랜드를 통합을 염원하는 시인의 처방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이츠의 성숙한 시에서 풍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구현한다. 풍경은 한편으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자연의 유비적인 이미지 역할을 한다. 또 한편 풍경은 초월을 지향하는 상징의 열쇠로서 기능한다. 그의 시에 제시된 풍경은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본질상 지상의 상관물이 없는 초월적 상징에서 비롯된다. 그의 많은 시에서 풍경은 자연풍경과 감각적인 이미지에 의해 유혹되지만 심층적인 구조의 통일성과 의미는 비자연적이고 초월의 상징에서 나온다. 자연의 이미지는 초월의 상징을 외적으로 현시한 것이다. 하지만 초월의 상징은 현시되기 위해서 자연의 이미지가 필요하며 자연의 이미지에 의존하고 그것에 의해 동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