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조각상」 , 「델픽 오라클을 위한 소식」 , 그리고 「긴다리 파리」 의 순서에 대한 중요성을 탐구하려한다. 본 연구자는 이 세 시의 순서는 예이츠의 위대한 예술에 대한 견해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이츠는 위대한 예술은 비극으로 시작해서 기쁨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섹스로 끝난다고 쓴 적이 있다. 예이츠는 예술을 신혼 첫날밤의 기쁨 같은 존재에 비유하기도 했다. 「조각상」은 비극적인 시이고 「델픽 오라클을 위한 소식」은 섹스의 기쁨을 노래한 시인데 이 기쁨은 예이츠에게는 천국이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이 두 시 다음에 「긴다리 파리」가 위치한 점을 눈여겨보아야 하는데 이 시 역시 비극과 섹스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어 앞서 제시된 같은 주제를 확장하고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시를 통해 기쁨을 추구하려는 예이츠의 의도는 그의 정치적인 목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아일랜드 국민을 유토피아로 이끄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고대 그리스보다 더 위대한 문명의 요람으로 세계에 우뚝 설 미래의 아일랜드이다.
예이츠는 초기시 일부를 미간행으로 남겼다. 본 논문은 이 미간행시들 중 「일출」을 분석하여 물의 은유법, 영혼의 이미져리, 코머의 (미)사용, 어린시절의 예이츠에게 미친 셸리의 영향 등을 포함하여 시인 자신이 선정하고 간행한 그의 시전집 과 희곡전집의 후기 작품에서 어떻게 이 시적 양상이 다시 나타나는 지를 분석한다. 「일출」은 예이츠 초기 산문 「셸리 시의 철학」과 「무드」가 보여주듯이 초기에 예이츠가 셸리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인 예이츠는, 시인과 과학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시인은 논리보다는 이미지와 무드로 말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출」의 내용과 이 시가 쓰여진 방법은 미래 의 시인 예이츠의 진로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 시는 앞으로 예이츠가 어떤 시를 쓸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가 된다. 이 시가 아직 미숙하지면 지금의 위대한 예이츠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원천이 될 것이다. 본 논문은, 아마도, 영미권은 물론이고 국내외 예이츠 학계에서는 세계 최초로 “미간행”(예이츠 생전에 출판을 막았던) 시 「일출」을 분석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W. B. 예이츠는 긴 세월 동안의 저작 활동을 통해 세 가지 다른 무드 를 보여준다. ‘최종 무드’를 향한 그의 여정은 도피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라파엘 전파를 거치면서 차츰 형성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 전통과 민담에 관심을 바탕으로 후기 낭만주의자로 저작 활동 시작했지만 곧 동화와 같은 꿈나라에서 벗어나 삶과 현실의 세계로 들어갔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으로 그는 미와 시에 대한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초기 시는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인해 낙담과 사색적인 무드에 빠졌지만 모드 곤에 대한 실연과 아일랜드 관습에 대한 환멸로 예이츠는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시적 주제는 현실적이 되었다. 한편 아일랜드와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예이츠에게 폭력과 파괴에 대해 폭넓게 다루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중세 시대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이를 철학적 함축과 숙달된 이미지에 승화하였다. 진정한 비극적 영웅처럼 예이츠의 여정은 어둠에서 빛으로, 고통에서 가슴에 감춰둔 기쁨으로 이어졌다. 파괴는 배경으로 사라지고 현자의 흥겨움이 전경을 차지했다. 예이츠는 진 정한 가치가 있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분출했다. 그는 『최후의 시편』에서 시인의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뛰어난 비전을 제시했다. 후기 시에서 예이츠의 시적 기쁨은 초기 시에 표현된 낙담, 황량함, 외로움의 어조를 압도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던과 예이츠의 시에 나타난 죽음에 대해 비교 고찰하는 데 있다. 던이 죽음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죽음을 갈망하는 태도와 죽음을 끈질기게 거부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나 던은 둘 다 죽음을 극복하고 통합하여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역설적 관점을 제시한다. 예이츠는 죽음을 삶의 영원한 끝이라고 보는 관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감성적인 생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예이츠는 죽음 이 후의 영혼의 존속과 육체의 환생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던과 예이츠는 죽음이 삶의 끝이라는 것을 부인하나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상이하다. 던은 기독교 교리를 통한 신앙에 기초하여 죽음을 극복하나 예이츠는 예술의 영원성에 기초하고 있다.
예이츠와 아우로빈도 고시의 작품은 삶의 후반기에 시를 위한 여러 해의 주제, 출처 및 구조로 남아 있었다. 예이츠는 마지막 시기까지 시적 위대함을 추구 했고 아우로빈도 고시는 초의식과 합쳐질 때까지 서사시를 쓰고 영혼의 변화, 영혼의 여정에 대해 몰두했다. 예이츠의 『환상록』은 달의 28위상과 인간 마음과 문명의 원리를 나타낸 기하학적 상징이며, 아우로빈도 고시의 『성스러운 생명』은 영적 진화, 초심적 의식을 향한 초인간적인 분투의 두 방법을 사용하여 물질을 통한 마음의 고양, 초월적 마음, 초의식, ‘존재, 의식, 행복’로의 고양을 추구한다. 예이츠의 철학서 『환상록』은 탁월한 시적 성취를 위한 신화 체계이라면 아우로빈도 고시의 『성스러운 생명』은 궁극적인 현실을 달성하기 위한 미로이다. 삶은 계속되고, 인간이 죽을 때 삶이 성장 하기 위해 호흡이 필요하고, 육체의 기관은 삶을 위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고, 육체의 기능이 상실될 때 삶은 물러난다
“문 없는 문”은 불교의 무문관에 나오는 공안이다. 연구자는 인간들이 공연히 문을 세우고 그 인위의 문을 통과하려고 애를 쓴다고 본다. 물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통, 관습, 규범이 다 그런 것들이다. 데리다의 해체주의도 마찬가지다. 라캉의 말에 따라, 인간이 타자의 산물인데 어떻게 타자를 해체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보르헤스의 말에 따라 나의 텍스트는 타자의 소산이 아니던가? 데리다가 말한 차이와 연기도 헤라클레이토스와 노자가 수 천 년 전에 이미 말하였다. 같은 물살을 두 번 체험할 수 없다고. 또 소쉬르의 기호학의 요지도 노자와 장자가 수 천 년 전에 도가도 비상도, 무위자연으로 이미 말하였다. 그래서 본고 에서 해체주의는 기존의 확립된 예이츠의 시 해석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생산에 일조 하려고 한다. 그것은 타자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이기에 타자의 텍스트를 해체한다는 말은 자기부정의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확립한 해체주의 또한 타자의 소산 으로 해체의 대상이 된다. 이런 점에서, 예이츠의 마스크 , 말씀 , 재림 을 분석한 결과 “마스크”의 불가피성, 언어게임으로서의 소통의 공식,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대신 기계적 낙관성을 진단하여 기존의 해석에 대한 [차연]을 실천해 볼 수 있다.
1991년 작품 Seeing Things를 『사물보기』 혹은 『환영보기』로, 1995년 노벨문학상 직후의 작품인 The Spirit Level을 『기포 수준기』 혹은 『영혼 측정』으로 변역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가 물질세계로부터 영혼세계로의 건너가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의 이 같은 시도는 부모님의 죽음이 가장 큰 동기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에게 영향을 끼친 부모와 지인들의 추억을 그들이 남긴 유품이나 업적과 함께 불멸의 유골 단지인 자신의 시에 보존시키려 한다. 아울러 『영혼 측정』의 많은 시들이 애가나 소네트 그리고 패스티쉬 형식의 헌정 시로 쓰인 점은 필자로 하여금 시인이 다가오 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위의 추론을 이 시집 전체의 시를 읽어 증명할 뿐 아니라 수수께끼 같이 어려운 후기 시에 우리 말 번역과 해설을 시도하는 것이다.
예이츠는 켈트 신화를 초기 시의 소재로 사용하여 아일랜드에서 문예부흥 시대의 지평을 열 개 된다. 켈트 신화는 고대 아일랜드 지역과 현재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매개물로 작용하여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역사, 문화, 민족 정체성, 독립의 중요성을 계몽하기에 이른다. 이에 골 왕, 퍼거스 왕, 쿠훌린과 같은 신화적 인물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인간의 원형이 된다. 그래서 예이츠는 아일랜드에서 고대 켈트 시대의 문화가 새로운 문예부흥으로 복원되어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게 한다.
예이츠는 혼란스럽던 당대 아일랜드의 현실에서 영웅적 기상을 지닌 엘리트적 인물의 역할에 주목한다. 니체의 초인사상, 창조적 예술정신과 새로운 가치관, 삶에 대한 관점 등은 예이츠의 시세계에 더 넓은 지평을 열어주었다. 니체에 영향을 받은 예이츠의 귀족주의는 귀족주의적 삶의 양식을 실천함으로써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물질적 인 속박에서 벗어나 내면의 자율성을 키워나가게 한다. 그의 귀족주의를 재산과 혈통으로 결정되는 위계질서가 아닌 개개인의 내면을 고양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체계로 이해할 때 더 나은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하나의 인위적인 예술적 이상향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삶 속에 귀족주의적 삶의 영역을 마련하여 예술과 학문의 가치를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나누어 갖자는 의도를 지닌다.
예이츠는 지속적으로 이원론적 분열과 갈등을 다루지만, 그의 초기와 중후기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시인에게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게 한 것은 니체다. 예이츠 의 초기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과 이상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을 경험하고 삶을 부정한다. 1902년 니체를 만난 후, 그의 비극론은 예이츠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다. 고통으로부터 삶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아폴론적 힘과 이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디오니소스 적 힘의 결합은 비극적 삶과 예술 그리고 “비극적 환희”에 대한 예이츠의 태도에 반영된다. 니체와의 만남 후 예이츠의 인물은 여전히 비극적 삶을 마주한다. 그러나 인물은 의지를 갖고 환희를 창조하며 삶을 긍정한다.
본고는 드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와 예이츠의 전환기 시를 중심으로 각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초 영국 사회와 20세기 초 아일랜드 사회를 조명한다. 우선 이 연구는 『로빈슨 크루소』가 소설의 발생을 중심으 로 하는 당대 사회적 변화와 이로 인한 세대 및 계층 간의 갈등 구도 속에서 탄생하였다 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종교적 전통으로의 회귀’에 초점을 맞추어 18세기 초 영국의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이 소설이 담당하는 역할과 가치를 고찰한다. 한편 예이츠의 전환기 시는 20세기 초 아일랜드 사회에서의 갈등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문화운동으로 아일랜드 민족을 통합하려는 예이츠의 시도는 아일랜드 민족에 내재된 언어, 종교, 계층의 다양성으로 인해 오히려 분열의 지속, 심화 양상을 보인다. 예이츠는 전환기 시인 1913 년 9월 (“September 1913”)에서 물질주의에 집착하는 가톨릭 중산층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하고 중산층에 대항하여 낚시꾼 (“The Fisherman”)에서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는 가톨릭 중산층과 영국계 개신교 엘리트 집단 양쪽을 비판하며, 인간애에 기초 한 귀족주의를 지향한다.
동물이 등장하는 셰이머스 히니 시의 자연 세계는 때로는 폭력적이며,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훨씬 복잡하고 상징적이다. 그는 인간의 세계도 과거 폭력적인 역사를 겪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안고 균형과 조화의 추구를 깨닫는다. 히니 시의 빈번한 고전적 운율과 리듬은 형식과 내용의 균형감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오해받는 오소리 이미지를 고려하고, 아첨하는 듯한 오소리 모습에서 오히려 우리도 마주하는 현실의 상황에 따라 그럴 수 있음을 수긍한다. 또 시인은 수달로부터 아내의 몸과 물을 가르는 힘 그리고 그녀와의 흐뭇한 여행을 화려하고도 단정한 동사와 형용사로 펼쳐낸다. 밤에 스컹크의 꼬리를 본 히니는 대다수가 떠올리는 냄새에서 벗어나 타지의 흙과 공기 그리고 베개의 아내 냄새로 치환하여 솔직하고 담담하게 아내와의 사랑을 추억한다.
이 연구는 W. B. 예이츠에 대한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다. 2021년 8월 KCI에서 ‘yeats’를 키워드로 910편의 논문이 검색되었고 최종 854개 논문의 제목을 연구대상으 로 선정하였다. Excel, TEXTOM 및 UCINET/NetDraw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분석을 실시하였으며 예이츠 관련 연구의 연도별 및 학술지별 게재 현황, 예이츠 관련 연구의 주요 키워드, 주요 키워드 간의 연결중심성과 네트워크 분석을 시행하였다.
예이츠는 확실히 완벽한 시의 시인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 어느 때건 끊임없이 자신의 시를 다듬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비추어 자신의 시를 완벽하게 만들려고 했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질문에 답 해야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간행하지 않았던 시들을 간행해야 하는가? 나는 이 시들을 읽고 나서 예이츠의 판단에 동의하고자 한다. 즉, 발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시 연구학자들에게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달빛 아래서: 초 기미간행시』 (조지 본스틴; 뉴욕: 스크리브너, 1995)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난해한 원고를 읽고 해독하고 각 시에 주를 다는 본스틴의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