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시의 후렴을 예이츠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기 위해 전반적 이고 개별적인 가까이 읽기를 한다. 요약, 강조, 및 전후 연결도구로서 구어시에서 생긴 것이 후렴이다. 예이츠는 이 구어시의 기법을 평생 사용하는데, 시의 모티브와 주제를 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반복을 사용한다. 그는 초기시와 말기시에서 이 후렴 을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자유시가 범람하는 당대의 시에서, 오랜 시의 전통에서 얻은 예이츠의 예는 좋은 모델이 된다. 「긴 다리 소금쟁이」같은 시들의 면밀한 분석은 예이츠가 후렴을 사용하여 얻는 미묘하고 강렬한 의미 만들기의 예를 잘 보여준다.
모더니즘과 그 이후의 문학적 진전에 있어서 19세기 말의 중요성을 주 장하는 최근의 연구에 맞추어, 본 논문이 주장하는 바는 예이츠가 자신의 시적 업적을 쌓기 위해서 라이머스 클럽 회원들의 중요성을 견지했었다는 것이다. 라이넬 존슨, 어 네스트 도슨, 아서 시몬과 같은 1890년대 인물들에 대한 그의 자서전의 글을 면밀히 분석하면, 왜 그들의 인생과 작업이 비참하게 끝났는지에 대한 상당한 불확실성이 노 출된다. 1890년의 생존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는 복잡하며, 고전적, 낭만적 선례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90년대의 인물들에 대한 그의 1922년의 회고의 글을 비극적 세 대라고 칭한 것은, 그들의 지속적 가치에 대한 예이츠의 존경의 몸짓을 나타낸다.
캐나다 시의 정원에 뿌려진 씨앗 중에서 예이츠가 1차세계대전 이후의 캐나다의 대표적 시인들과 문학운동에 미친 직간접적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이 논문 은 아직 예이츠 연구분야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은 예이츠의 북미 강연여행(1903-4년)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캐나다 본연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작가들에게 캐나 다의 몇몇 도시에서 행한 예이츠의 강연이 어떤 영감을 주는 지 연구할 것이다. G.D. 로버츠와 블리스 카먼의 작품에서처럼 예이츠와 그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비유와 비 교점은 캐나다의 시에 깊이 베어있다. 시의 요람으로서 캐나다 남부와 몬트리올의 맥 길대은 캐나다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을 생산하는데, 스미스를 대표로 하는 맥길그룹은 A.J.M 스미스와 F.R. 스콧이 편집하는 맥길 격주 리뷰와 같은 군소 문예지를 통해 서 캐나다의 시에 체계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소개한다. 특히 스미스는 이전의 캐나다 의 시 기법에 아일랜드의 모더니스트적 기법을 녹여서 시의 혁신을 가져온다. 스미스 자신의 작품은 시작법과 강한 어조는 쉽게 예이츠의 시를 연상시킨다. 이 논문은 예이 츠와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이 캐나다의 모더니스트 시 운동에 미친 가닥을 찾아서 문학의 직물을 짜고자 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시 「청금석」의 상반되는 동서학자들의 분석을 검토 한다. 서구의 학자들이 이 시에서 비극적 기쁨의 보편적 의미를 보려 하지만, 동양의 학자들은 이 시가 예이츠의 동양의 예술과 미학에의 심취를 들어 낸 것으로 읽고자 한다. 이 상반된 견해는 칼빈 비디언트와 주단이 이 시의 중국의 풍경화를 논의한 연구에서 가장 잘 대비된다. 비디언트는 중국의 풍경화를 시인의 나르시스트적 자기표현 으로 보지만, 주단은 그 풍경을 시인 자신의 영감의 원천으로 읽는다. 본 논문은 이 시에서 중국의 풍경이 촉발한 동서 회화시의 전통의 충돌로 읽는 제임스 헤퍼넌의 시 각예술과 문학 사이의 긴장된 협상으로 보는 회화시 이론에 근거하여 본 논문은 예이 츠 자신의 시작 과정에서 동서의 영향의 복잡성을 들어내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 때 엑스프라시스는 범텍스트적, 범 문화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예이 츠 연구 동향에 미루어, 이 논문은 엑스프라시를 읽는 방법으로서 범텍스트적, 범문화 적 접근이 해석학적 근거와 문맥의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보다 큰 서구의 세속화 문학담론에서의 모더니즘의 정의는 어려운 작업 이다. 어떤 비평가는 모더니즘은 이어받은 문화적 패러다임과의 과격한 단절을 나타내 며 이로써 종교의 몰락을 가속화하거나 적어도 세속화의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엘리엇, 파운드, 조이스 및 울프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초월주의와 영성의 흔적들이, 삭제되기 보다는, 강조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예이츠는 이 세속화과정 어디에 위치하는가? 예이츠의 초기작 이후 밀교적이고, 연금술적이고, 내세적인 것에의 현혹이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예이츠의 가장 잘 알려진 시들을 초월성이 나 영성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본 논문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시들에 대조적으로 공 존하는 초자연적 관심과 내재적 실상의 절묘한 혼재를 가늠하여, 세속화 과정 속에서 예이츠에게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다. 1920년대의 예이츠의 주된 관심이 정리된 탑 (1928년)의 시들을 읽을 것이다. 이 시기는 초월적인 것이 점차적으로 내재적인 것으 로 이행하는 그의 작품 속에서의 변환기이다. 탑의 원고들은 예이츠가 영적인 것을 상상할 때 그가 보이는 수정적 과정을 포착하고 있다.
시는 기이하여 우리를 울고, 미소 짓고, 웃게 하거나, 우리를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하며,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혹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한다. 어린 아이에게 시를 가르칠 수도 있지만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시는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기와 다른 시에 작동하는 것들과 접함으로써 시인의 마음과 지력이 예민해진다. 본 논문은 세 시인, 셰익스피어, 예이츠, 파운드의 시적인 특징 몇 가지를 다룬다. 이 시인들은 비슷하다기보다 전혀 다르지만 공통점이 좀 있다. 각자는 자신의 시대를 반영하고 자신의 시대가 요구하는 시를 빗는다.
예이츠는 1920대의 내전을, 히니는 1968년부터 98년까지의 북아일랜드 사태라는 혼돈의 시대를 경험했다. 이 논문은 이 두 시인의 이 같은 내전에 대한 반 응을 그들의 시를 통해 고찰함을 목적으로 한다. 내전에 대한 예이츠의 반응을 구체적 으로 살펴보면 그는 처음부터 그의 영적 기질과 앵글로 아이리시라는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나 이상적 과거라는 영적인 유토피아로 도피하려 했고, 아일랜드 공화국 탄생의 밑거름이었던 부활절 봉기에 대해서도 애매한 찬사를 보냈으 며, 내전에 대해서는 환멸과 의도적 회피를 나타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 기 시에서는 낭만적 아일랜드를 옹호하는 앵글로 아이리시의 귀족적인 어조를 찾아낼 수 있었다. 한편 히니의 경우에는 가톨릭 차별에 대해 온건한 저항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아일랜드 사태의 근원을 찾아내려함과 동시에 화해적인 전략을 추구함 으로써.객관적으로 반응하려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예이츠와 히니는 이 같이 해결할 수 없는 내전 상황에서 소수파 예술가이기 때문에 내적 망명인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 논문은 노년을 주제로 다루는 예이츠의 시 작품 일부를 분석한다. 그 의 시에서 특이한 점은 노년과 나이 들어감의 문제가 그의 초기 시에서 말기 시까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즉, 예이츠는 나이 들어감은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연금수령자의 탄식」은 20대에 쓰인 작품인데, 인간은 노쇠한 육 체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시간의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시이다. 이 논 문은 각 시에서의 미묘한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한다. 즉, 「당신이 나이 들면」, 「학동들 속에서」, 「탑」, 「모든 영혼의 밤」,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등을 읽을 것이다. 각각의 시 에서 노년에 대한 예이츠의 양가성이 보이는데, 우리는 이 시들을 단순히 노년의 시들 로 부르지 말고 이 각각의 시에서의 미세한 차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환상록의 기하학적 상징은 개인과 문명의 역사의 스케일을 조정하면 서 지도를 그린다. 예이츠는 역사를 입체파의 그림과도 같이 지그재그형식의 가이어의 움직이는 도형의 관점에서 시각화하였다. 가이어는 예이츠가 정신과 역사를 동시에 그 려보는 지도상의 스케일에 속한다. 가이어는 항상 멀리가서는 다시 자신의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셔틀콕과 같다. 외견상 개인과 문명의 역사의 움직임은 미로같이 보인다. 그러나 스케일의 수학적 구조를 지닌 환상록은 정신과 역사의 안과 밖에서 기능하 고, 가이어의 스케일은 결코 변화를 멈추지 않고 소용돌이처럼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예이츠의 가이어의 시학은 바로 스케일의 시학의 원조이다.
이 논문은 아일랜드 시인들이 역사가 낳은 희생자들을 기술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시로 표현한 엑프래시스 장르 를 통해 이들은 민족의 공식적인 역사 이면에 잊혀진 이들을 되살리는 시도를 한다. 예이츠는 레이디 그레고리와 싱의 초상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국계-아일랜드인들이 아일랜드 사회를 지배하던 과거 전통을 이어받아 상상의 공동체를 건설한다. 예이츠가 희생자들을 통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히니는 공동체를 위해 희 생당한 이들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표현하는데, 이는 당대 북아일랜드 사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예이츠는 지배계급 이데올로기를 반영하여 고정된 민족 정체성을 추구한 반면, 히니는 늪지에 관한 시에서 특정한 관점에 고정되지 않는 민족 정체성을 구상하고 있다. 현대시인 멀둔과 더컨은 희생자들의 이미지를 통해 국가권력 기관의 폭력성을 폭로한다. 멀둔은 정신병원에서 철저히 감시되는 한 개인을 그리고, 더컨은 한 개인의 사적 영역인 신체마저도 통제하는 국가사법 시스템을 비판한다.
예이츠는 플라톤 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시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중첩시 키거나 병치하여 그의 사상에 보편성을 부여하고 구체화한다. 그는 초기시기에 예술의 개념, 미의 개념, 다이몬(Daimon)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개념들을 플라톤에게서 차용하 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는 후기시기에 플라톤의 형식의 이론, 혹은 이데아 사상, 영혼불멸사상, 우르(Ur.)의 순환과 방추와 같은 이미지를 사 용하여 자신의 윤회사상, 사랑의 필연성, 관용, 역사의 순환 등과 같은 자신의 사상을 명확하게 확립하여, 결국 궁극적 실재의 추구의 시스템을 완성한다. 그래서 그는 초기 의 다양한 종교단체의 활동으로 획득된 자신의 사상체계를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에 중첩과 대조를 통해서 세계적 시인으로써 갖춰야할 인류의 보편적 지혜인 궁극적 실재의 완성을 성취했다고 선언한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의미하는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점점 기계와 일체화 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과 기계의 흥미진진한 세기의 대결 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에 벌어진 한국의 한 바둑 명인과 영 국 인공지능 알파고의 게임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면 알파고와 예이츠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알파고가 인간의 지식을 축적한 인간의 아바타이기 때문이고, 인간의 기억과 기계의 기억은 코드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고, 인간과 기계는 모두 저장된 기억을 활용하여 행동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 러니까 칼 융의 ‘집단무의식’에 상존하는 원형이나, 라캉이 말하는 ‘타자의 언술’이 인 간을 작동시키므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인공지능인 알파고에 해당되는 셈이다.
예이츠와 셰익스피어는 극작품에서 유령이나 요정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많이 사용했는데 작품에서의 활용은 목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접근 방법이 다 르다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인물들의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사용된다. 특히 마음속에 숨겨진 욕구나 감정 또는 무의식을 드러내는데 사용한다 는 것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유령은 인간들과 닮아 있고 인물들의 반응 을 적극적으로 끌어낸다. 예이츠의 유령들은 추상적이고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데 이런 방식의 표현은 셰익스피어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유령 이야 기를 다룬 대표적인 드라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예이츠의 에머의 유일한 질투 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예이츠는 그의 시에서 성적인 은유와 죽음이라는 소재를 즐겨 다루었다. 이는 그의 초기시부터 후기시까지 상당히 광범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를 다룬 초 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의 시들을 비교해보면 성적인 메타포와 죽음에 대한 소재가 그 의 시적 또는 영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사후 또는 영의 세계로의 유혹의 도구로 사용되다가 중기에 이르러 서는 죽은 아이리쉬 영웅들을 기억 속에서 소생시키려는 그의 의도를 느낀다. 후기에 는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분열이 가져온 한 정치적 영웅의 죽음을 반추하며 이러한 극한대립을 화해하고 녹이기 위한 비전으로 승화시킨다.
예이츠 연구에서 나이 듦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그가 어떻게 노화에 따 른 예술적 에너지의 쇠퇴를 극복하기 위해 노년을 새로운 활력의 시기로 정의하고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문제점은 예이츠가 보여 주는 나이 듦에 대한 시적 모색이 내포하고 있는 특정 문맥과 특수성을 도외시한 채 그의 문학이 성취한 보편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 논문은 이중의 방식으로 예이츠에 나타난 나이 듦의 문제를 살펴본다. 먼저 나이 듦의 문제를 ‘에이지 연구’를 통해 드러난 시간성에 대한 통찰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를 중심으로 시인이 어떻게 신생 아일랜드 자유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감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지 살핀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다른 희곡작품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캘버리 를 주체성과 개인성이라는 주제 아래 집중 분석한다. 무용수들을 위한 4대극(1921) 중 하나인 캘버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산문시 선의 실천가(1894)에서 영감을 받았 고 일본 고전극 ‘노’의 형식과 기법을 차용한 극이다. 본 논문에서는 오스카 와일드와 예이츠의 정신적이고 미학적인 연관성과 차이를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이츠의 주 체-객체의 이율배반적 체계와 관련 있는 기독교적인 이미지, 도상, 이야기의 차용에 대해 논의한다. 또한, “환대”의 개념을 둘러싼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논쟁을 통해 캘 버리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와 다른 인물들의 주체성 및 그들의 관계를 살펴본다.
본 연구는 안티노미가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초자연의 노래」전체 작 품을 관류함을 논술한다. 시인은 이 연작시에서 성의 문제를 자연계를 넘어 초자연적 영혼의 세계로 확대하였다. 가시적 대응구조인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 천상의 합일을 대척점에 놓아 섹슈얼리티의 안티노미 구도를 갖춘 것이다. 예이츠가 제시한 종교적 안티노미는 이미 넓고 깊이 인식된 기독교 정신과 교리를 전혀 새롭게 사색하게 하는 일종의 도발이다. 그는 남성 위주의 성 삼위일체가 아닌 남녀와 자식으로 구성되는 양 성적 삼위일체를 주장하고, 사랑이 아닌 증오가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 명의 대립구도는 서양의 긴 문명사를 동양의 은자가 일갈해서 허무는 데 압축돼 있다. 성산 메루의 은둔자는 종교적, 철학적, 문명사적 혜안으로 모든 서양 문명의 쇠락을 설파한다.
예이츠의 초기시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를 겪던 시기에 발표된 것 으로, 암울한 국민들의 마음속에 고상하고 영웅적인 기상을 심어준 것으로 높이 평가 된다. 이러한 찬사는 예이츠가 신화, 아일랜드의 전설, 자연에 근거한 다양한 메타포를 사용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예이 츠가 초기시에서 어떠한 메타포를 사용했으며, 그것들은 예이츠 자신의 연애 경험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과 어떠한 연관을 맺고, 어떤 함축적이 고 내재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직유와 상징을 메타 포와 같은 비유적 표현의 한 유형으로 간주하고 메타포로 통일하여 부르고 논문의 서 두에 그 이유를 밝힌다.
평론 「무드」에서 예이츠는 무드를 초자연적인 존재의 노동자이며 전언 자로서 정의를 내리면서 과학적 지식으로 고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비가시적인 삶 의 관념을 전달한다고 설명한다. 시인에 따르면 우리가 신성한 힘과 마주할 수 있는 영역인 영원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무드이다. 무드에 대한 예이츠의 시학 은 상징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점차 바뀐다. 상징을 통해 그는 무드 속에서 감각을 넘어서 운동하는 관념과 속성을 환기하거나 암시한다. 그렇지 않다면 알려지지 않을 초 자연적인 존재가 상징을 통해 무드 속에서 환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