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는 예이츠를 아일랜드에서의 제국적 지배의 몰락에 즈음하여 탈식민화의 작가로 보는데, 예이츠는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아일랜드의 유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비슷한 탈식민적 접근을 하는 케냐의 작가 응과에와 도잉고는 식민이전의 현실에서 후기식민기에서 현대성으로의 전환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다. 본 논문은 그들의 극작품화에 나타난 탈식민화 시학을 점검한다. 예이츠의 극『캐스린 니 홀리한』(1902년) 은 아일랜드 정신의 민족화와 탈식민화에 직접 반응하는 아일랜드의 농민의 억압된 상황을 묘사한다. 『정신의 탈식민화 하기』(1986년)와 다른 긱큐유언어로 된 극에서, 도잉고는 문화적 제국주의가 어떻게 아프리카와 범아프리카에서 심리적 정복의 일환으로서 식민주의를 활용하는 지 검토한다. 극을 저항의 장소로 개념화하여, 그는 식민이전의 케냐의 극의 근원과 토착적 빈 공간을 파괴하는 영국의 극적 제국을 대비한다. 두 작가는 정치를 극화하고 영제국주의에 대한 극을 정치화하여 자신들의 유산과 언어를 되살린다. 두 작사는 청중의 정신에게 귀한 유산을 강조하면서도 극공연에서 토착어를 조명하려 한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작품의 춤의 모티브, 특히 “어신의 방랑”과 다른 시 들에서의 춤을 연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예이츠의 시와 일본의 노극 『천의(天衣)』를 비교한다. 이 논문의 의의는 일부 평자들이 잘못 주장하듯 노극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예이츠 작품을 분석하는 근거로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파운드와 펜놀로사가 번역한 2편의 노극 『천의』와 『사랑의 마술봉』을 다루는 시리즈 중 첫 번째 연구이다. 본 논문은 예이츠가 노극을 접하기 전과 후의 춤의 이미져리를 포함하는 작품을 다룬다. 따라서 본 연구와 차기의 연구는 예이츠가 얼마나 노극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영향에 불구하고 노극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더 라도 그의 작품이 여전히 가치가 있는 지를 규명할 것이다.
예이츠의 마스크이론과 자신의 시적 이력은 강렬하고 복잡한 관계를 보이는데 이 점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일생동안 시적자아와 실자적 사이에 항시 존재하는 긴장을 주목한다. 마스크는 시인의 분기된 자아를 나타내며 자신의 비밀스런 자아대신에 이 분기된 자아를 묘사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생의 도전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예이츠의 이 여정은 자신의 좌절, 감정, 감흥을 비개성적인 객관화된 보편적 진실로 변화하는 여정이었다. 일견 간단해 보이는 이 마스크 이론은 그의 비전과 연결시킴으로써 복잡해진다. 이 이론은 시인을 극의 배우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여기서 그는 자신을 실생활과 분리시킨다. 진실한 시인으로서의 예이츠는 마스크 이론을 성공적으로 승화시키며 개인뿐 아니라 전 아일랜드와 연결시킨다. 이렇게 마스크이론을 논할 때 아일랜드의 자유의 문제까지 대두하게 만든다.
예이츠는 후기에 들어 아일랜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자신의 시에 아일랜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예이츠가 자신의 후기시에서 당시 아일랜드 정치상황에 관해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이 연구는 이를 위해 예이츠의 후기시 가운데「1913년 9월」,「1916년 부활절」,「재림」,「비잔티움 항행」를 살피고 그의 마지막 시편 가운데 하나인「사람과 메아리」를 고찰하고자 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정치에 관해 찬미와 동시에 비난과 회의를 제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예이츠이 시극『그림자 어린 바다』에서 소유의 순간이 어떻게 꿈을 꾸는가? 본 논문은 꿈의 시작과 끝의 요호바적 전환부를 들여다본다. 즉 어떻게 성공적으로, 기교적으로 소유, 대리, 및 위치확정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잡아내기 어려운 불확정적 신비성을 들어내는지를 본다. 또 환각적 꿈꾸기의 중성적 특성을 위한 그의 창의성이 얼마나 유연하며 자연적인지도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각적인 선상의 일련의 사건 들의 결말과 클라이맥스에 우리는 만족하는가? 이에 대한 문제도 검토한다.
예이츠의『모래시계』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강한 반대가 없었던 현자의 무신론적 가르침이 전면에 내세워진다. 예이츠의 바보는 현자의 죄를 부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우둔하면서도 사악하지는 않지만 이기적인 역할을 극 전반에 걸쳐서 일관되게 보여주는 예이츠의 바보 인물은『리어왕』에서 셰익스피어의 바보 인물 보다 더 단순하게 표현된다. 셰익스피어의 바보가 리어왕을 위해 하듯 예이츠의 바보는 현자를 위해 관객의 연민을 자아내는 역할에 기여하지는 않는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희곡『갈보리』에 나타난 예이츠의 실험적 연극 장치들을 연구한다. 예이츠의 실험적 연극 장치들은 극장을 개혁하고자 하는 그의 반연 극적 노력에서 기인되었다. 그의 노력은 연극적 재현의 혁명적 개혁을 이끌었고, 그의 연극이 디에게시스 연극이라고 불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갈보리』에서 예이츠는 예수의 ‘꿈으로 다시 살기’라는 신성모독의 위험이 있는 주제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과감한 연극적 장치들을 사용하였다. 관객들의 감정적 반응을 자극하는 모든 자연주의 연극적 요소들을 과감하게 제거하고 그 대신에 다양한 거리를 두게 하는 장치들을 사용하였다. 특히, 디에게시스적 언어로 극을 파편화시키는 디에게시스 장치를 이용해서 관객들이 극의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서 머릿속에서 상상하도록 이끌었다. 그 결과, 예이츠는 관객이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고 극적 갈등이 관객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연극이 가능하게 하였다.
아일랜드 독립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민족주의자들과는 달리 예이츠는 비폭력적이고 문화적인 방법을 취했다. 초기의 아르카디아와 인도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 벗어나 고대 켈트족의 영웅 전설을 작품화한 장시『어쉰의 방랑』은 예이츠 문학 일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어쉰이라는 고대 켈트족 영웅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면서 예이츠는 세 가지 켈트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첫째로, 고대 아일랜드의 영웅의 일화를 다룸으로써 민족의 단합과 고대 켈트족의 가치 부활을 시도했다. 둘째로, 아일랜드의 자연을 부각시키면서 자연과 민족성 및 종교를 연관시키고 있다. 셋째로, 고대 아일랜드의 영광을 부활시키는 수단으로 음악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켈트족 영웅인 주인공 어쉰에게 시인 자신을 투영시켜 조국 독립을 위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고 한 것이다. 예이츠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대 켈트족 음영시인(바드)의 전통을 이어받아 용사이자 시인인 어쉰의 묘사와 예를 통해 조국을 재 건설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되살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예이츠와 히니 모두 죽음 이후 재생을 믿을지라도 그들의 죽음과 재생의 상상력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예이츠에게서 죽음은 ‘심미적이며 낭만적 차원 으로 건너가는 문지방’인 것이다. 반면 히니는 버질의 『이니드』의 이니스처럼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러 영적 항해를 기획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마지막 작품인 『인간 고리』에서 히니는 ‘고리처럼 이어지는 생명 에너지의 대물림 현상’이라는 죽음에 대한 통찰에 도달한다. 한편 그의 죽음의 시는 전원 애가, 소네트 그리고 페스티쉬등의 다양한 장르로 표현됨도 고찰된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산문에 나타난 그의 문학비평론을 확인하여 그의 문학사상을 파악하고 그가 시창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는 연구이다. 특히 그의 동시대 작가였던 테니슨, 브라우닝, 아놀드 등 세 명의 빅토리아시대 시인들에 관한 비평을 통해 문학적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예이츠의 자리매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예이츠의 문학비평의 기준이 시인의 비전 제시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 기준으로 볼 때 세 명의 빅토리아 시인들에 대한 실망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예이츠는 새로운 문학전통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드 곤에 대한 보답 없는 사랑은 예이츠의 사랑의 시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얻은 여인보다 잃은 여인에 상상력이 대부분 머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모드 곤이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예이츠의 나날은 비참함으로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참함이 없었다면 시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여인의 사랑이 아니라 시였다. 모든 곤을 이룰 수 없는 여인으로 만든 것은 예이츠 자신 이다. 그는 영혼의 결합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짓는 것에 행복했을 것이다. 시를 위해 여인은 여전히 이상적 사랑으로 보답 없는 채로 남아있어야 한다.
파운드와 단테는 시, 지옥편을 상징적 매체로 사용하여 인간 세상에서 절대선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파운드는 런던의 현대사회를 지옥으로 묘사하여 현대 문명의 타락과 현대인들의 비도덕적 삶을 질타한다. 반면에 단테는 성경에 토대를 두고 지옥을 설정하여 사후세계의 지옥을 설명한다. 파운드는 플로티노스의 안내로 지옥 여정을 시작하고 끝내지만,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다양한 지옥을 여행한다. 요 컨대 두 시인은 지옥을 인간의 심리적 상태로 묘사하여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절대선을 실천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가야할 여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은 드포(Daniel Defoe)와 예이츠(W. B. Yeats)의 전쟁과 사회에 대한 태도를 비교한다. 드포가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폐해를 제시한다 면 예이츠는 내전이 발생할 정도로 격렬한 갈등에 휘말린 사회 상황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결국 예술에서 위안을 찾는다. 18세기 초 영국, 특히 런 던을 중심으로 급상승하였던 범죄는 장기간 지속되었던 전쟁에서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당대 급증했던 범죄율과 함께 여성의 범죄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다. 여성범 죄는 런던 빈민층에서 높은 빈도수를 보였으며, 많은 수의 남성이 참전한 시기에 더욱 급등하는 경향을 보였다. 18세기 영국의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는 드포의『몰 플랜더스』(Moll Flanders, 1722)는 전쟁, 사회, 여성의 삶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내전기의 사색」(“Meditations in Time of Civil War”)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아일랜드와 영국의 전쟁과정을 경험한 시인이 느끼는 내적 감정, 특히 반 영국 정 서와 저항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으로서 예이츠 자신은 예술의 위대함으로 현실을 초월하지도 못하고, 역사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도 못하는 한계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 며, 시를 쓰는 작업 속의 명상으로 한순간 위안을 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