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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1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셰이머스 히니의 전체 시는 고향 떠남, 방황 그리고 귀향이라는 삼부 구조로 구성되어있다. 그의 초기 시집 『자연주의자의 죽음』부터 『북 쪽』은 북 아일랜드를 떠나기에 앞서 북 아일랜드 사태가 초래한 시인의 정신적 갈등을 다룬 작품들이다. 이들 중 특히 『어둠의 문』에서 작가는 자유를 향한 변신의 몸짓으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면서 자신이 순수 시인이 되어야 할지 아니면 참여 시인이 되어야하는 지에 대한 갈등을 표현한다. 그리고 『북 쪽』은 북 아일랜드 사태의 근원과 그 해결법을 추구하면서도 이 사태로부터 탈출해야 할 것인가 아닌가의 갈등 그리고 떠나갈 것을 결정하기까지의 작가의 내적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4,900원
        22.
        2012.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죽은 부친과 동료 문인에 대한 그리움이 창작 동기가 된 『환영을 찾아서』는 애가인 동시에 작가의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엿 볼 수 있는 초월 시 작법 서다. 시인은 죽은 자의 소유물을 응시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들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와 더불어 작가는 그들이 사라 진 사후세계를 상상 함으로써 현실세계로부터 영혼세계로의 항해를 시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들은 죽은 자들에 대한 회상 및 연민을 그린 점 때문에 낭만적 태도로부터 탄생 되었고 죽은 이들이 남겨 준 정신적 유산에 관심을 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는 점 때문에 부분적으로 모더니즘 작품의 특성을 나타낸다. 나아가 구체로부터 추상으로 의미의 다양화를 시도한 점 때문에 포스트모던 경향 역시 띤다고 평가할 수 있다.
        5,200원
        23.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예이츠와 히니 시를 갈등과 그것에 대한 해결이라는 관점으로 읽고 분석해 그 두 시인이 경험했던 갈등과 그 해결법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고찰한다. 그런데 그들의 갈등은, 예이츠의 경우에는 그가 1920년대 현대 아일랜드 초기 독립을 위해 싸웠던 시기 그가 앵글로 아이리쉬였다는 점에서 주로 파생되었고, 히니는 1960-70년대의 북아일랜드 사태 때 영국령에 살았던 카톨릭 아일랜드 인이란 점에서 주로 기원한다. 그런데 그들 자신의 갈등을 풀어 가는 해결법에서 두 시인은 모두 아일랜드인의 영혼의 중심인 “이시나흐”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4,800원
        24.
        201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의 목적은 예이츠 시에 나타 난 니체의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이츠 시에서 니체의 사고인 영웅, 전쟁, 갈등 찬미, 서구물질 문명 비판, 야수적이고 무서운 미 찬미, 기독교에 대한 거친 비판 및 귀족에 대한 자부심과 비극적 환희 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예이츠 시에서 순환적 역사관, 이성보다 열정을 우위에 두는 디오니소스적 삶에 대한 신념과 초인의 도래를 기다리는 니체의 사상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5,200원
        25.
        2003.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However hard a poet may cry out 'art for art's sake', art works are likely to be evaluated by the political surroundings: a poet is very likely to represent the class he belongs to and to react to the political situation through his own works. A poet who suffers from the turmoil of the transitional period can be a victim of the period in the sense that he can be evaluated irrespective of the real value of his works. This paper is motivated by our current social phenomena that the fanatical nationalism to evacuate the past is also applied to the work of reevaluating writers of the past as well as of the present; interestingly, the same situation happened to Yeats. This paper starts with some hypothesis that the primary reason for the lower reevaluation of Yeats since the birth of Free State until its rebirth as a member of E.U. is that he belonged to the Anglo-Irish Ascendancy. And then this paper investigates identity and contribution of the Anglo-Irish to Irish history. And finally this paper tries to find out how Yeats reacted to the radical change of hegemony especially after Responsibilities. The investigation into his poems leads us to the conviction that in his first stage, he wanted to surrender his half-blooded Englishness to his another half-blooded Irishness. This explains why he tried to dig up the ancient Gaelic culture and to advocate the Gaelic Catholic in his first stage. However we can witness his changing attitude after the Easter Rising: some threat from the majority Catholic fanaticism awakened Yeats's self-recognition as an Anglo-Irish, advocating their class and culture in his poems since Responsibilities. It follows that although Yeats wanted to be an artist for art as such, he could not but seek for reconciliation of two aspects of Ireland, -that is, its religion and ethnicity. Yeats's poetry reflects the shift in the political hegemony and the definition of the Irish identity. My conclusion is as follows. The main reason Yeats's evaluation was going down during the period Ireland was being established as a republic country is that he belonged to the Anglo-Irish Ascendancy, the past power group. Through Yeats's poems we can witness the decline and agony of the Anglo-Irish during the birth of Republic of Ireland. Therefore the historical contribution of the Anglo-Irish is to be reevaluated; Yeats's Literary Revival is also referred to as "a cracked mirror of the servant". By reading again Yeats's poems from the new perspective towards Yeats as an Anglo-Irish, we can see that Yeats's advocacy of the Anglo-Irish was made only after he was threatened by the fanatical Catholic nationalism and that he adhered to the reconciliation of the divided Ireland throughout his life. Meanwhile, this study leads to another question: Is it possible that the art is free from the political pressure or turmoil? In my opinion, although art is not free from that situation, it can only survive when it shines in the filthy tide, searching for the independence and freedom. I think W.B. Yeats is an example.
        5,100원
        26.
        200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이츠, 엘리오트, 조이스등 모더니즘 문학작품 속에서 독자는 서구문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더니즘 문학은 르네상스 이후 4세기를 주도하면서 이루어낸 영국적 실용가치관이 주도한 현대문명을 비판한다. 가까이는 영국빅토리아 시대의 극단적인 형태의 정치, 경제, 도덕, 문화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즉, 정치에 있어서는 제국주의, 경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도덕과 문화에 있어서는 속물주의, 종교에 있어서는 기독교에 대한 반성과 해부를 그 특징으로 한다. 무엇보다 예술이 도덕, 정치, 종교의 시녀의 역할에서 벗어나 예술자체로 독립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예술은 그 실용성보다는 미 자체로 다시 태어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이츠의 부르주아 문명에 대한 비판은 그의 영적이고 시골적인 것을 찬미하는 기질과 그의 18세기 앵글로 아이리쉬 문화에 대한 애착 그리고 순진하고 신선한 원시성을 지닌 아일랜드 풍물에 대한 매튜 아놀드 같은 이의 찬미에 힘입어 주로 실용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아일랜드 중산 계급의 심미적인 결핍을 공격하는 양상을 띤다. 한편, “재림”이라는 시에서는 서구문명의 해체까지를 예언하며, 또 한편으로 “비잔틴으로의 항해”에서는 예술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세계를 그려낸다. 그의 문명비판의 특징을 좀 더 확실히 규명하기 위해, 서구 문명을 소유와 지배로 규정한 아도르노와 비교해 본 결과, 예이츠가 부르주아의 소유욕을 비판할 지라도 아도르노처럼, 서구 문명에 내재된 착취, 지배라는 사회학적 억압기재를 찾아내지 못했다. 돈과 실용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자본주의에 심취한 부르주아는 죽음을 미적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고 성적에너지를 자연스럽게 구가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이츠는 아도르노처럼, 문명을 지배와 억압이라는 사회학적인 차원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시적 가치와 미적인 삶을 충실히 구가할 수 없게 하는 파괴자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예이츠가 지배의 구조를 서구 문명 안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과 달리 그는 예술로만 지배되는 이상적 국가를 제시한 점은 그 역시 부르주아로서의 지배 욕구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이츠는 문명의 속성인 지배를 향유한 계급으로서 지배와 착취의 현장을 외면했으며 피지배자들을 동정하기보다 그들의 미적인 결핍을 지적했다. 특히 그가 예술로만 지배되는 파시즘적인 미학을 가진 것에서 그의 부르주아로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살아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예이츠와 대다수 아일랜드인의 공동 목표는 아일랜드적 문화를 만들려는 데서는 공통점을 보일지라도 정치와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면에 있어, 서로의 감각은 매우 큰 차이를 드러냈다고 평가된다. 그 당시 대다수의 아일랜드인들이 예이츠의 문학을 “노예의 깨어진 거울”로 평가 절하시킨 것이라든지 아일랜드 내에서 예이츠 미학에 대해 별로 호응이 없었던 것도 예이츠가 자신의 시에서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의 현장을 외면한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즉, 정치와 경제, 사회계급에 민감했던 아일랜드 중산계층은 예이츠의 예술 지상국 창조를 하나의 환상으로 보았을 가능성과 자신들에 대한 예이츠의 공격을 새롭게 도전하는 노예에 대한 상전의 방어로 보았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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