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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국의 五代十國시기는 중원의 물적, 인적 자원이 대량 양자강 남쪽으로 이동했던 시기 이다. 이는 당 말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안정된 정세 속에서 새롭게 번성하였다. 특히 南唐의 南京은 산동성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매번 북방이 혼란해 질 때마다 동북쪽 이민 들이 이동하여 밀집되는 곳이다. 서하사의 역사적 배경에도 이러한 동북방 유민들의 영향이 확인되며 사리탑의 조성 배경 에서도 동일하게 찾아진다.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당시 중국 남쪽에서 성장하여 특히 남부 지 방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법안종의 화엄적 성격이다. 서하사 사리탑은 화엄경의 깨달음으로 여래가 출현하면서 불, 보살, 천왕, 역사상, 나 한 등이 화엄삼성의 연화장 정토 세계에 함께 모인 장면을 華嚴藏海 위에 구현하고 있으며 밀첨식 지붕, 3단의 앙연판 탑신받침, 목조 건축을 세밀하게 표현하면서도 공포 부분을 생략 하고 둥글게 처리한 지붕돌 등의 양식은 당 중기 이후 조성되는 중국 동북방 지역의 밀첨식, 화엄경 석탑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어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吳越 杭州 지역의 석탑 3기는 유사한 배경 속에서 먼저 조성되지만 서하사사리탑과는 달 리 지역적 특색을 발휘하며 새로운 진전을 보인다. 이상을 통해 볼 때 중국의 중심 문화는 오대 이후 남쪽으로 그 중심축을 이동했으며 이들 문화를 수용한 송나라는 개봉을 수도로 중국 문화의 맥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800원
        2.
        199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9,300원
        3.
        200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南塘 韓元震(1682-1751)의 󰡔대학󰡕해석 가운데 내용상의 요지를 적출하여 그 특징과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栗谷 李珥로부 터 싹트기 시작한 大全本 小註에 대한 비판과 주자의 여러 설을 辨正하여 定論 을 정하려 했던 점을 남당의 󰡔대학󰡕해석의 기본관점으로 보았다. 남당의 󰡔대학󰡕 해석의 요지로는 經一章의 ‘明德’ ․ ‘六事’ ․ ‘本末始終’에 대한 해석, 止於至善章 을 知止 ․ 能得과 연관시켜 해석하고 제4,5절을 明明德의 止於至善과 新民의 至 於至善으로 해석한 것, 聽訟章의 本末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 誠意章의 ‘自欺’에 대한 해석, 正心章을 主靜工夫로 보는 해석, 修身章을 성의장 ․ 정심장과의 연속 적 맥락에서 파악한 것, 齊家治國章을 推 ․ 化의 구조로 본 것, 治國平天下章의 ‘絜矩’를 辨正한 것 및 새롭게 分節을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남당의 설은 상당 부분 주자의 설을 더 심화 발전시킨 것이며, 주자의 여러 설을 변정하여 정설을 확정한 것도 있고, 전 제10장의 分節처럼 주자의 설 과 다른 설을 개진한 것도 있다. 남당의 󰡔대학󰡕해석은 주자학적 󰡔대학󰡕해석 가 운데 가장 정밀한 해석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남당의 설이 발표됨으로써 다시 이 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한층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 었다. 이런 점에서 남당의 󰡔대학󰡕해석은 우리나라 󰡔대학󰡕 해석사에서 끼친 공 헌이 지대하며, 그 위상 역시 중요한 자리를 점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