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五代十國시기는 중원의 물적, 인적 자원이 대량 양자강 남쪽으로 이동했던 시기 이다. 이는 당 말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안정된 정세 속에서 새롭게 번성하였다. 특히 南唐의 南京은 산동성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매번 북방이 혼란해 질 때마다 동북쪽 이민 들이 이동하여 밀집되는 곳이다. 서하사의 역사적 배경에도 이러한 동북방 유민들의 영향이 확인되며 사리탑의 조성 배경 에서도 동일하게 찾아진다. 또 다른 주요 요인은 당시 중국 남쪽에서 성장하여 특히 남부 지 방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법안종의 화엄적 성격이다. 서하사 사리탑은 화엄경의 깨달음으로 여래가 출현하면서 불, 보살, 천왕, 역사상, 나 한 등이 화엄삼성의 연화장 정토 세계에 함께 모인 장면을 華嚴藏海 위에 구현하고 있으며 밀첨식 지붕, 3단의 앙연판 탑신받침, 목조 건축을 세밀하게 표현하면서도 공포 부분을 생략 하고 둥글게 처리한 지붕돌 등의 양식은 당 중기 이후 조성되는 중국 동북방 지역의 밀첨식, 화엄경 석탑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어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吳越 杭州 지역의 석탑 3기는 유사한 배경 속에서 먼저 조성되지만 서하사사리탑과는 달 리 지역적 특색을 발휘하며 새로운 진전을 보인다. 이상을 통해 볼 때 중국의 중심 문화는 오대 이후 남쪽으로 그 중심축을 이동했으며 이들 문화를 수용한 송나라는 개봉을 수도로 중국 문화의 맥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문자는 은주 갑골문 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차례의 자형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중 자형의 변화 과정에 가장 중추적 역활을 한 시기가 춘추 전국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문자는 처음 산생되었을때, 사물의 형태를 본떠서 만든 문자이므로, 자형이 무척 복잡했다. 그래서 쓰기에도 무척 불편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문자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자의의 핵심되는 부분만 골라서 쓰기 시작하여 점점 자형의 간화현상이 깊어만 가는 것이 고대문자의 변천 흐름이다. 그러나 간화 현상이 활발히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그 반대되는 현상이 만만치 않게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크게 두 가지로 그 현상들을 분류하였다. 첫째, 외형적인 장식을 위하여 자의와는 무관한 기호와 편방들을 첨가하여 자의를 더 강조하였고, 혹은 원래 있던 글자의 성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다시 음가가 비슷한 편방을 첨가하여 소리를 인지시키는 역활을 했다. 이로 인하여 자형의 번화 현상이 일어났다.
오월문자의 번화현상을 분류해보면 외형적인 장식의 첨가현상은 다른 춘추 전국 시대에도 같은 현상이 있지만, 글자아래에 세로 두획을 길게 늘어 뜨려 장식 하는 현상과 「厘」 자에 의미없는 편방 “子”를 첨가 시키는 현상은 다른 지역에서는 드믄 현상이다. 자형의 구조적인 번화 현상 중에서 성부“美”를 첨가 시키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