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완도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의 복장 기록인 중수 원문(1865년)의 해석과 불 상 양식의 비교분석을 통해 불상의 제작 시기가 1628년임을 밝힌 것이다. 중수 원문의 기록 에 의하면, 완도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은 1628년에 조성되었고, 1802년ㆍ1845년ㆍ 1865년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원 봉안처는 해남 대흥사 대광명전이었고, 1845년과 1865 년에 불상의 중수를 주도한 승려는 초의 의순이었음이 확인된다. 초의 의순은 19세기 전라 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원담 내원(1845년)과 용완(원) 기연(1865년)과 함께 신 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을 개금ㆍ중수했다. 특히 초의 의순은 선교(禪敎)와 학예(學藝)에 뛰 어난 자질을 가졌으며 19세기의 대흥사 불사를 이끈 승려이다. 두 화승(내원과 기연)은 초의 의순이 주도한 대흥사 불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완도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이 1628년에 조성된 사실은 중수 원문의 기록과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상들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파악했다. 초의 의순이 쓴 「대둔사신건광명전상 량문(大芚寺新建光明殿上樑文)」, 「대둔사비로전신건화연소(大芚寺毘盧殿新建化緣疏)」, 「불상개금모연문(佛像改金募緣文)」에 의하면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은 1628년에 조성 된 후 대흥사 대광명전 비로자나삼불상 가운데 좌존으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 사 대광명전은 화재로 소실되어 1841년에 새로 건립되었다.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의 양식 특징은 조각승 태전이 조성한 대흥사 목조약사ㆍ아미타불상(1612년)을 계승했고, 현진이 1610년에서 1630년 사이에 제작한 불상과 친연성이 강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응원ㆍ인균파 및 수연파 불상의 특징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에 조성되어 19세기 대흥사 현창 운동 과정에서 새로 건립된 대광명전에 봉안되어 개금ㆍ중수된 불상으로, 교학과 학예면에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초의 의순이 불상의 개금ㆍ중수 불사를 주도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사 및 불교미술사를 연구하는데 자료의 가치가 매우 크다.
본 시험은 산간부인 진안(해발 303 m)에서 생식생장기에 일반상수를 대비하여 냉수를 유수형성기와 감수분열기에 4, 8, 12 일간 관개하였을때 야기되는 물질생산 및 수용계의 냉해반응을 알고자 수행하였던 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냉수관개기간이 길어질수록 간장, 수장, 추출도의 신장이 억제되었으며, 유수형성기 냉수관개는 하위절, 감수분열기 냉수관개는 상위절의 절간신장을 단축시켰다. 또한 지경 및 영화의 퇴화는 유수형성기 냉수 관개에 민감한 영향을 받아 2차지경과 영화의 분화착생수 감소 및 퇴화의 증가를 보였다. 2. 불임율과 등숙장해도 냉수관개기간이 길어질수록 심하였고 유수형성기보다 감수분열기 냉수관개에서 피해율이 현저히 높았는데 특히 피해반응이 예민한 시기는 영화원기분화기와 감수분열기경이었으며 불임율, 등숙비율과 수량과는 유의적인 상관관계를 보였다. 3. Source와 Sink 관련형질중 지경과 영화의 퇴화는 엽면적에 영향을 받고 불임율과 수량은 간장, 수장,추출도의 신장량과 상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