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주로 현장조사와 문서수집을 통해 중국 윈난다이징포자치주 루이리시 더훙 다이족 전통마 을의 현황과 현대 사회발전이 덕홍 다이족 전통마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먼저 더훙지역의 지 형, 기후 등 자연배경과 사회구조,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 덕홍 다이족 마을의 입지선정에 대한 역 사적 이유를 확인하였다. 그 중 문헌조사를 통해 더훙시 다이족의 16개 무형문화재 보호마을 중 가장 잘 보존된 곳이 한사마을임을 확인하였고 다이족 전통마을 경관연구의 대상지로 선정하였다. 본 논문 에서는 한사마을을 공간구성과 경관요소로 나누어 조사 및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한사마을은 자 연공간, 농업공간, 생활공간, 도로공간, 공공활동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마을 외곽 경계부는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여 독립적인 형태를 띤다. 내부 공간구성은 채두(寨頭), 채심(寨心), 채미(寨尾)의 세 결절점을 중심으로 형성되며, 이러한 구심점을 통해 전체 마을 공간의 조직과 원시종교, 상좌부 불교가 어우러져 내향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형태를 보인다. 한사마을의 경관요소는 건축, 식재, 시설물로 구 분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경관 측면에서는 한사마을의 독특한 종교와 기후, 한족 문화의 영 향을 받은 독특한 빌라식(别墅式), 건란식(乾欄式) 건축양식을 확인했다. 둘째, 한사마을 현장조사를 통해 불교의 영향과 자급자족하는 등 상징성 및 실용성을 강조하는 식재경관의 특징을 발견하였다. 시 설물은 대불교의 도덕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시설의 스타일과 기능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상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한사마을의 공간 배치는 민족의 역사와 종교로부터 배태(胚 胎)된 결과라는 결론을 도출하였으며, 종교적 신념과 공동체적 정신이 마을 전체를 지배하고 행태를 통제하는 경관을 보임을 확인하여 마을의 특수성과 보전 가치를 입증하였다.
이 글은 默齋 金墩의 文集인 『默齋集』을 중심으로, 그의 詩文을 검토하여 분석한 것이다. 김돈은 아직은 학계나 일반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김돈과 그의 문학을 보고하는 첫 보고서라는 의미와 試論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는다.
寒士, 즉 ‘가난하거나 권력이 없는 선비’라는 사전적 정의는 김돈의 처한 입지와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는 가난했고,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문학과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김돈에 관한 자료가 2권 1책으로 묶인『默齋集』이 전부인 상황에서 그의 학문세계를 온전히 드러내기는 여건상 매우 어렵겠지만, 남아있는 시와 문을 통해 그의 문학세계를 짚어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은 묻혀있고 잊혀져있던 남명학파의 실체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이것은 어려운 상황과 처지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剛毅한 정신세계를 이루었던 한 지성을 알리는 작업이며, 그가 남긴 예술적이며 심미적인 문학작품의 가치를 학계에 알리는 작업이다.
김돈이 남긴 시는 169수이다. 남명학파의 문집이 대체로 분량이 적고, 시편이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역사에 대한 慷慨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몇 편이 있다. 이 작품들은 대체로 충신과 열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감정을 피력한 것인데, 특히 망국의 역사적 상황 속에 忠節을 다하였던 인물들의 원통함에 공감하고 함께 의분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김돈은, 평화로운 시기에 비록 知遇를 받지 못했더라도 危難의 시기가 오면 결연히 떨쳐 일어나리라는 결의를 평상시에도 늘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또한 김돈은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고 학문을 닦고 덕성을 기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결연한 의지로 실천해나갔다. 그는 특별히 알아주는 이 없는 ‘寒士’이지만, 부귀영화나 입신양명의 현달을 꿈꾸지 않았다. 그저 매일 학문을 닦고 인격도야에 매진하다가, 만약 위난의 시절이 닥쳐온다면 결연히 떨쳐 일어났던 남명학파의 선배들 발자취를 따르고자 했다. 또 한편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安貧樂道를 말했지만, 그 진정성은 의심스럽다. 즉, 우선은 가난하지 않은데 가난하다고 한 경우가 많고, 진정으로 도를 즐긴 삶이 아닌데도 도를 운위한 것이 의심스러운 인물들도 많았다. 그런 경우에 비해 김돈은 진솔하다. 가난하기에 가난하다고 했고, 입신양명이나 현달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일생을 학문에 정진했기에 도를 즐긴다고 할만하다. 이는 寒士의 剛毅함이라 요약할 수 있다.
김돈은 剛毅한 지조를 가진 선비였지만, 가족과 친족에게는 더없이 다감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평범함이 시로 표현되고 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진솔함과 다정함이 묻어나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평범함이 오히려 더 비범함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교유관계가 원만한 사람들은 타고난 성품의 덕도 있지만, 그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대한 노력이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돈은 그런 심성과 노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공부하는 선비라면 文房四友에 대한 나름의 애착이 있기 마련이다. 공부에 꼭 필요한 文房具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金墩의 문학에는 文房四友가 아니라 五友가 자주 등장한다. 다섯 번째 벗이 기도 하고, 이 벗이 있어 五友가 완성되기도 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김돈은 매우 다정다감한 감성을 지닌 文人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