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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선행연구의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본기물의 銘文에 대한 여 러 이견을 정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각도에서 글자를 隷定하고 현대어 역과 역주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의견을 도 출해 내었다. 먼저, 기물의 명칭은 그동안 < 比鼎>․<鬲攸从鼎>․<鬲攸比鼎> ․ <鍋攸从鼎>․ < 攸从鼎>․ < 攸从鼎>․< 攸從鼎>․ < 傱鼎>․ < 从鼎>․< 攸比鼎>․< 攸比鼎>․<攸比鼎> 등과 같이 다양하 게 불러졌는데, 본고에서는 자형분석을 통해 < 攸比鼎>으로 비정하 였다. 둘째, 기물의 연대에 대해 선행연구에서는 대체로 厲王․宣王․西周후 기로 분류하고 있는데, 기물의 기형과 문양, 명문의 내용과 서풍을 토 대로 < 攸比鼎>을 西周후기 厲王 32년에 제작된 기물로 추정하였다. 셋째, ‘ ’자의 해석에도 ‘鬲’․‘鍋’․‘ ’․‘ ’․‘ ’․‘ ’ 등으로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였는데, 자형을 근거로 ‘ ’자로 예정하고, 商周시기 기 물과의 비교를 통해 이 글자가 ‘盉’의 初文임을 새롭게 증명해 내었다. 넷째, 比는 攸衛牧과의 소송에서 승소하고 이미 ‘攸’땅을 돌려받 았기 때문에 ‘ 攸比’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돌아 가신 할아버지 丁公과 아버지 惠公을 위한 존귀한 鼎을 만들게 되었 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皇祖는 商代의 유풍과 같이 干支를 사용하여 ‘丁公’이라 하고, 皇考는 周代의 풍습을 따라 ‘惠公’이라고 호칭하였다. 어쩌면 比의 조상은 상나라 계통으로 서주 초․중기에는 殷遺民으로 상의 풍습을 계승해 오다가 아버지 때에 와서 주나라 방식으로 시호를 바 꾸어 완전히 서주에 동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8,1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