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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영규사실기」의 내용에 의거하여 그의 생애사와 의병활동 을 확인해보고, 왜 그런 기록이 등장했는지, 불교와 유교측 간에 영규에 대한 시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규사실기」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는 시점에서 영규가 전란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의병장들의 전투 기록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영규사실기」에서는 영규가 전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나무를 쪼개 무예훈련을 했다던가, 단단한 나무를 발견하면 따로 숨겨두었다는 것은 스스로 미래의 전란을 대비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조헌과 고경명 등 호남지역의 의병장을 하게 되는 이들이 갑사로 찾아오는 장면은 이른 시기에 의병모집을 했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영규사실기」에서처럼 사실(史實)이 확인되지 않는 내용으로 영규를 미화하거나,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인물로 묘사하는 것 등은 유교 지식인들이 쓴 영규 관련 자료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불교 측이 영규를 선양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유교 측에서는 적극적으로 영규의 의병활동에 따른 계율논쟁을 변증하고, 그의 충절을 부각시켜왔다. 이는 영규의 의병부대가 전란 초기에 전과를 올림으로써 조선정부의 위기상황을 전환시키는데 기여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에 「영규사실기」와 같은 문헌이 등장하고, 계룡산에 사우를 세우는 등 영규에 대한 추숭작업이 이루어졌던 것은 이러한 불교와 유교 간의 누적된 시각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유교 지식인들의 노력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불교 승려로서가 아니라, 왕조를 위해 절명한 의병장으로서의 영규를 추숭하려 했던 그들의 의지가 배경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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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1.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계룡산국립공원 갑사 계곡에 위치하는 낙엽활엽노거수군집의 식생군집구조를 부석하기 위하여 18개의 Belt-transect를 설정하여 조사하였다. 노거수군집 전체면적은 46.442m2이었고, 이 중 노거수가 차지하는 면적은 35.246m2이었으며, 대표적인 현존식생은 느티나무군집, 팽나무군집, 회화나무군집, 소나무군집, 말채나무군집이었다. 노고수의 규 은 흉고직경이 50~120cm, 수고가 18~22m 이었으며, 흉고직경 70cm이상되는 수종은 소나무(1주), 느티나무(9주), 갈참나무(8주), 졸참나무(1주), 회화나무(2주), 말채나무(1주)이었고, 본 조사 대상지의 평균수령은 150년생 내외이었다. 18개 조사구에 대하여 DCA의 ordination 분석결과 소나무군집, 느타나무-낙엽활엽수군집, 검팽나무-낙엽활엽수군집, 회화나무군집, 말채나무군집, 팽나무군집으로 분리되었다. 교모측의 우점종감의 평균거리는 8~12m이었고, Shannon의 종다양도는 0.7~0.9(단위면적:200m2이었다.X〉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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