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다루는 사회 계층화의 문제는 전통적으로 제시되는 사회적 실재로서 주어지는 사회 계층이나 집단(social stratum, class, group, etc.)에 대한 분석의 연장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세분화 경향으로 나타나는 계층화/구획 짓기(make a section)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 확인은 사적 생활(privacy)을 공적 문제(public or community matter)라고 확인하는 구성원들의 시각 전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 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전통적인 객관성, 간주관성, 사회성 등에 대한 이해가 구성원들 의 주관성 거름망(filter)을 거쳐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문제를 바라보거나 이해하는 특정한 시각이나 관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현상과 사실들을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의 감성 구획(section)이 어떻게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 절단되는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개인이 갖는 주관적 ‘믿음’과 그러한 믿음의 바탕이 되는 감성적 도식(sensible schema)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조금 더 단순한 방식으로 정리한다면, 이는 구성되는 주체 혹은 주체의 구조적인 측면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분할/분리된다고 믿는지 검토하는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감각적인 것의 나눔과 부르 디외의 사회적, 문화적 취향의 구별 짓기에 대한 검토를 거쳐, 이전의 사회상에서 벗어나 는 비정상(abnormal)이 아닌 새로운 질서/규범(new normal) 형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려 한다.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은 인종 경계선의 문제가 비단 짐 크로우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는 문제임을 역설한다. 뿐만 아니라, 인종 경계의 사회적 구별이 엄격했던 짐 크로우 시대에 비해, 혼혈 및 혼종을 통해 인종 경계선이 흐려져 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여전히 인식론적으로 인종 경계선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에 오히려 그 문제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져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진 이주와 이산의 문제가 한 데 얽히면서, 인종 경계선의 문제가 민족성, 국가 정체성 등의 문제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스는 21세기의 문턱에서 『휴먼 스테인』을 통해 바로 이러한 인종 경계선의 복잡한 제 양상을 다루고 있다. 『휴먼 스테인』에서 패싱과 할례는 서로 긴밀하게 결부되면서 소설의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패싱과 할례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인종, 민족성, 국가 정체성의 문제 등 다양한 요소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왔다 는 점에서 『휴먼 스테인』의 주제의식과 긴밀하게 부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에서는 로스가 『휴먼 스테인』에서 뉴밀레니엄의 ‘구별짓기’의 문제를 패싱과 할례라는 기제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