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국립박물관과 불교박물관들이 개최한 불교미술 전시현황을 정리하고, 대중 화에 성공했던 전시 사례로서 ‘창령사 터 나한상 전시’를 분석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불교 미술 전시의 대중화 방안을 제안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미술 전시는 1990년대 기획전시의 공간이 확보되고 큐레이터들의 역량이 성장한 이후 학술적으로 깊이 있는 불교미술 전시를 개최할 수 있었다. 2005년 용산 이전ㆍ개관을 기점으로 특별전시 운영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립박물관의 학예 연구 역량과 국 제적인 위상을 드러내는 불교미술 전시들이 개최되었으며 최근에는 기존 전시 형식을 탈피하 는 기획을 통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한편, 불교박물관의 불교미술 전시는 사찰의 성보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 위상과 고승 대덕의 업적, 그리고 사찰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창령사 터 나한상 전시’는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 나한상을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 시켜 관람객이 불교미술에 빠져들고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였다. 다양한 전시연계 프로그램 의 운영과 SNS를 통한 홍보 역시 전시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나한상 전시 분석을 바탕으로 불교미술 전시의 대중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 전시 주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시연출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야 한다. 넷째, 도록을 다양화해야 한다. 다섯째, 연계 교육 프로그 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여섯째, 다양한 전시행사를 기획해야 한다. 일곱째, 불교미술 의 콘텐츠가 지닌 개성과 역사성을 반영한 ‘캐릭터’를 개발하여 보급할 필요가 있다.
나한신앙은 나말여초 시기 중국 절강성 천태산에서 유입되어 고려시대 성행한 불교신앙 중 하나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나한이 천태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나한재 를 통해 祈雨, 國難克服, 長壽 등 현세와 관련 깊은 소원을 빌었다. 고려시대의 나한상은 천태종이 발원한 중국 절강성 지역 나한상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자 세로, 다양한 지물과 함께 조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시기 중국의 나한상에선 볼 수 없는 ‘두건’을 쓴 나한도상도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도상은 승가대사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 으로 생각된다. 이 영향에는 천태종단의 배경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천태종의 본산인 국청사에서는 북송시기 지자대사, 승가대사, 그리고 나한을 함께 모셨다는 기록이 전한다. 관음신행을 중시한 천태종단에서는 관음의 화신인 승가대사를 수용 하였으며, 나한과 관음을 동일시하였기에 세 존상을 함께 모신 것으로 보인다. 국청사를 방 문하였던 고려의 승려들은 두건을 쓴 승가대사와 지자대사를 보았을 것이다. 지자와 승가 모 두 두건을 쓴 신이한 승려이므로, 신이한 승려인 나한에게도 이 이미지가 적용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본 논고는 일본 헤이안 시대 말에서 가마쿠라 시대 초기 중국에서 전래된 차의 수용 양상 을 천태대사공(天台大師供), 계어독경(季御讀經), 북두법, 나한신앙과 나한공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당시 궁정과 사원 의례 및 승원에서 사용된 차의 구체상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입송(入宋) 일본 승려들의 일기류 문헌, 선원청규(禪苑淸規)를 포함한 송대 사원의 각종 규칙서, 당시 남송 승원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나한도에 표현된 끽다 관련 양 상을 함께 분석하여, 일송(日宋) 교류의 배경 속에서 입송 일본 승려들이 중국에서 경험한 사원 의례와 승원 문화 속 차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것이 어떻게 일본에서 수용되었 는지 그 구체적 일면을 고찰한다. 의례적인 관점을 통해 단순한 기호 음료가 아닌 갖추어야 할 공양물로서의 차 그리고 영적인 효능이 기대되던 차의 구체적 사용양상을 이해할 수 있으 며, 중국 송대 사원의 의례와 규율이 일본에 전래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