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근세 일본의 사료에 나타난 울릉도 ·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중심으로 그들이 말하는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 우산도, 자산도)가 한국의 영유임을 재확인해보는 것이다. 일본이 17세기 고유영토설의 근거 사료로 삼고 있는 『죽도기사』의 곳곳에서 이미 울릉도와 우산도가 조선의 역사지리서에 기술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음을 볼 때, 일본은 이미 17세기 이전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이 영유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죽도고』에서도 역시 오야와 무라카와 집안이 80년간 울릉도에서 불법적인 어로활동을 한 사실만을 가지고 자신들이 되찾아야 할 섬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인식으로 지적할 수 있다. 왜구의 노략질로 고통 받던 울릉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섬을 비워둔 것을 사람이 살지 않는 폐도라고 하면서, 잠시 동안 그곳에서 어로활동 한 것을 핑계로 자신들이 되찾아야할 섬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 중 <포인트 3>의 ‘17세기 고유영토확립설’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록각서(元祿覺書)』에서 안용복 일행이 타고 온 배에 걸린 「조울양도감세장 신 안동지기(朝鬱兩島監稅將 臣 安同知騎)」라고 쓰여진 깃발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안용복이 울릉도 · 독도가 조선의 영유임을 일본 측에 선포하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울릉도와 우산도(자산도) 양도의 감세장을 칭하며 죽도(울릉도)의 조선영유를 당당히 확인하기 위해 도일한 것임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근세 울릉도 · 독도 관련 일본사료에 나타난 지리적 인식의 특징을 보면, 조선에서 울릉도 · 독도까지 거리를 실제보다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원록각서』와 『죽도기사』에서 안용복의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죽도고』를 편찬한 오카지마는 오히려 조선에서 울릉도 · 독도까지의 거리가 더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울릉도 · 독도가 조선영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공간적 거리보다 인식적 거리가 훨씬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근세 일본의 사료에 대한 검토, 특히 ‘울릉도 · 독도의 지리적 인식’에 대한 검토는 일본 측의 ‘17세기 다케시마 고유영토설 주장’을 비판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본 연구는 2011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주요 언론에서 다룬 독도에 관한 기사들을 바탕으로 언론분야에 있어서 독도문제의 보도현황을 분석하고 앞으로 개선하고 발전시 켜야 할 과제들을 이끌어 내고자 시도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주요 언론기관들의 독도관련 기사들을 보도 분야별, 보도유형별, 프레임 유형별로 현황을 파악한 후, 언론이 정책행위자인 정부와 정책평가자인 독자들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독도관련주제에 관한 보도들은 처음의 제한적인 상황에서, 국민정서에 편승하는 방향으로 선회되었다가, 오히려 오늘날에는 국민정서를 부추기어 정치적 인기를 만회하려는 선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은 정권이 영토문제를 실정을 가리는데 활용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국민이 독도문제로 인하여 군중심리에 묻여버리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과감 히 돌아설 수 있도록 종용해야 하며, 문제의 본질을 짚어주고, 때마다 발생하는 사건 · 사고 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장기적 안목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 언론은 각 정권이 독도문제를 정치적 이용보다 국가 장래에 도움이 되도록 정책으로 반영하고, 국민들이 독도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각자의 일상에 매진하도록 배려하는데 시금석이 되어 주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