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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의 근대사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따라 조선왕조가 몰락되고 일본 침략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건국과 미국 군정을 거쳤다. 올바른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여정에서 예술가인 작가로 살면서 제작한 작 품 속에는 작가가 감수한 시대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대 를 초월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작품에 투영함으로써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며 본질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작가 혼은 더욱 빛을 발 하게 된다. 종교의 교리가 내포된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연구, 분석한다는 것 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그림에 표현된 작가의 의도는 그림으로, 작 가의 생애나 작가의 기록된 말로써 연구될 수 있다. 장욱진의 경우 부인이 현존해 있고 많은 제자들과 지인들이 있으며, 양질의 도록이 나 그의 말을 기록한 책과 함께 비교적 많은 자료들이 있다. 장욱진의 그림에 나타난 불교관련의 본격적인 연구는 석사학위 논 문 1~2편 정도와 장욱진에 관한 불교관련 평문이 몇 편 정도이다. 그 래서 장욱진의 불교미학에 관해서는 불교와 연관 있는 그림과 함께 이들 평문도 참고하였다. 본 연구가 한국 근대 화단에 이름을 올린 많은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나타난 불교미학 연구에 실낱 같은 도움 이나마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 2010년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주관하여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장 욱진가옥에서 개최된‘부처님 오신날’전시회에 유족의 부탁으로 ‘장욱진 화백의 먹그림에 나타난 선(禪)사상’이라는 글을 전시 안내 장에 넣었다. ‘장욱진의 그림에 나타난 불교적 미학의 세계’를 조명 하는 원고에 많은 부분이 인용되었음을 밝혀둔다.
        8,700원
        2.
        201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의 목적은 추사의「세한도」에 나타난 예술세계를 불교적 사 유의 미학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 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하는 데 있다. 「세한도」는 추사가 제주 도 유배지에서 외로움과 고독, 절망의 끝에서 창작된 그의 예술세계 의 절정을 보여주는 수묵화이다. 여기에는 이무 것도 그리지 않은 듯 한 그림 저편에 실로 형언할 없는 사건과 얼룩진 트라우마와 당대의 풍경이 존재하고 있다. 즉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송백(松柏)에 비유하여 그린「세한도」에는 사제지간의 석 교(石交)의 깊은 정이 담겨 있다. 「세한도」에 내재된 중요한 코드 중의 하나는 불교적 사유의 미학이 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추사와 이상적과의 깊은 우정을 담아낸 「세한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텅 비어 고요하며 탈속과 성찰, 그 리고 비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불가의 선적 사유를 드러내 보인다. 이는 간결, 비움, 과감한 생략 등 선적 인식을 바탕으로 시·서·화 를 융합시켜 선과 각 예술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 준다. 간결하면서도 모든 것이 걸러지고 생략된 비움의 정신이 깃든「세한 도」는 구도에 가까운 염결성과 사제지간의 석교의 아름다움이 내재 되어 있다. 이처럼 추사가 문기의 경계를 넘어 선기가 충만한 선적 그림을 남긴 것은 그가 선의 세계에 깊이 침잠한 삶을 살았기에 가능 한 것이었다. 「세한도」의‘후조(後凋)’의 정신은 추사 한 사람만의 감 회가 아니라 조선의 모든 선비들의 정신이자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 야 할 정신이다.
        7,000원
        3.
        2014.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회화사(韓國繪畵史)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알려진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여러 장르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가 성취한 업적은 그가 활동했 던 영조(英祖: 재위 1725~1776)와 정조(正祖: 재위 1777~1800) 년간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꽃피울 수 있었다. 김홍도에 관한 연구는 당대 에 그와 함께 활동했던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을 필두로 현재까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추진되어 왔다. 그 결과 김홍도의 생애(生涯)와 작 품세계(作品世界)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진전되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부 분까지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김홍도의 불교 인물화(佛敎人物畵)에 대한 논문이 발표되어 주목된다. 김홍도는 정조의 명으 로 용주사 불화(龍珠寺佛畵)를 제작한 1790년(46세) 이후 급격하게 불교에 심 취한 듯 여러 점의 훌륭한 감상용 불교회화를 남겼다. 김홍도가 그린 감상용 불교회화는 대략 30점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가 겪은 인생 말년의 불행을 종 교적으로 승화시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깊은 여운과 감동을 전해 준다. 다양한 분야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 김홍도는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 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홍도는 여러 점의 도석인물화를 제작했는데「군선 도」같은 신선도는 젊은 시기에 치우친 반면 불교회화는 인생의 후반기에 많 이 제작했다. 김홍도는 46세 때 용주사불화의 제작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 어 진심으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김홍도가 인생의 황금기 때 제작한「남 해관음」이나「혜능상매」는 그의 예술적인 기량과 종교성이 합치돼 탄생한 수 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오히려 실의와 병고 속 에서 탄생한「염불서승」과「노승염송」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 은 작가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시련조차도 예술 가를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홍도의 불교 회화는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겠다.
        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