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예수재는 조선시대 수륙재와 함께 활발하게 설행되었던 불교의식 이다. 수륙재가 죽은 자의 안락을 위한 의식이었다면, 생전예수재는 산 자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경계하고 죽은 후의 영원한 안락을 누 리기 위한 의식이자 신앙이었다. 때문에 생전예수재는 낮에 설행되었고, 수륙재는 밤에 설행되었다. 조선시대 생전예수재의 직접적인 명칭은 나 암 보우가 찬술한 글에서 처음 발견된다. 예수재는 왕과 왕실, 조상, 그리고 스승과 자신의 평안을 위해 설행되었다.
조선시대 불교가 탄압받고 소외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식과 신앙은 단절되지 않고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후기는 두 차례의 전쟁과 자연재해로 전염병과 굶주 림이 일어났다. 결국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들을 추모하고 안락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이 설행되었다. 조선의 불교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계승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 글에서는 불교의례 생전예수재와 무당굿 산오구굿, 산씻김굿을 비교하 여 불교의례와 무속의례의 상통점을 찾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불교와 무속의 상관성을 살펴보았다. 두 의례는 분명 종교배경이 다르다. 하지만 최근 무형 유산이라는 범주 속에 불교의례와 무속의례가 모두 조사, 연구되고 있다. 국 가지정 무형문화재 제도 속에는 불교의례와 무속의례, 유교의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전통의례로 바라보고 있어 종교를 넘어서서 공통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비교를 통해 생전예수재의 운수단에서는 사자에게 명부의 여러 권속을 불 러 모실 것을 청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모두 망자 를 굿청으로 청하는 것이 핵심이다. 청하는 대상이 확연하게 다르다. 생전예 수재에서는 명부의 권속이라고 하여 망자가 중심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지 만,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망자가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생전예수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상단, 중단, 하단은 모두 산 사람들은 배제되고 철저하 게 성중과 명부의 권속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철 저하게 산 사람과 망자가 중심이 된다. 생전예수재는 설행된 장소에 명부의 여러 권속이 오기를 청한 후 받들어 모시고 대접하여 미리 덕을 닦는다. 생전예수재는 현실세계에 명부세계가 들어와 의례가 진행된다. 하지만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에서는 이승에 남아 있는 산 사람의 영혼을 망자로 대우하면서 온전하게 한을 씻고 풀면서 저승 으로 가기를 청한다.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에는 명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생전예수재를 명부세계의 권속을 현실로 모셔와 대접하기라고 본다 면,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현실의 산 사람이 무사히 명부(저승)로 떠나가 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생전예수재와 산오구굿, 산씻김굿은 살아있는 이들이 사후를 위해 거행하 는 의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구성방식이나 저승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다 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했는가를 논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불교보다 무속이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이 큰 것은 분명해 보인 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산 자들이 사후세계를 위해 기원하는 의례가 보편적 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색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러한 차이의 철학적ㆍ세 계관적 의미는 좀 더 깊이 있게 따져볼 필요가 있어 과제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