后山許愈의 저작 가운데 聖學十圖附錄이 있다. 이 책은 心經附註의 예
에 따라 성학십도를 부록한 것이다. 선배 주자학자들의 글 가운데 보완 해설이
될 만한 글을 싣고, 논란이 될 만한 부분에는 특히 스승인 한주 이진상의 학설을
끌어다 썼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입장을 총론격으로 제시한 統論이 남아 있어
그의 독자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퇴계와 성학십도를 따라 분명
한 주리적 입장에 선다. 그는 氣가 간여하는 차이와 갈등 등을 고려해야하지만, 중
요한 것은 우주의 근본이고 마음의 본체인 理라고 말한다. 이 源頭에 대한 이해
없이, 현실에 매몰되거나 의론부터 앞세워서는 아니된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퇴계의 주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같다. 그렇지만 그는 한 걸음을
더 나가는데, 氣의 현실적 제약을 퇴계보다 더 가볍게, 낙관적으로 본다는데 있다.
가령, 그는 사단뿐만 아니라 칠정조차 理發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성호 이익이 이
주장을 편 바 있다. 퇴계는 理氣의 대치를 주목하고, 둘을 균형있데 다루고 있는
데, 후산은 理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互發이 理氣의
대치와 갈등이라기보다 조화와 협력을 뜻한다고 말하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그리하
여 그는 스승을 따라 과감하게 心卽理를 주창한다. 이 주장은 당대의 특히 방산
허훈으로부터 양명학과 선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지경은 참
곤혹스럽다. 왜냐하면 후산 자신, 가장 극력하게 비난하는 대상이 양명학과 선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을,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비난하는 대상과 같다고 손가락
질하는 것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들 사이를 어떻게 갈라볼 것인가. 퇴계와 후산, 그리고 양명과 禪사이의 차이
를 어떻게 갈라볼 수 있겠는가. 나는 퇴계의 자리를 주리의 전형으로 보고, 후산에
게 ‘과격한 주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논평을 맡은 최석기교수께서 이의를
제기했다. 또 나중 최재목교수는 후산의 심즉리와 양명의 심즉리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들 사이의 차이를 확인하고 갈래를 정돈하는 일은
좀 더 뜸들기를 기다리고자 한다.
주자학은 天人合一이라는 우주인간론적 비전을 골격으로 한다. 이 테제는 근대적 심성에는 매우 비의적이고 난해하다. 이 사고는 인간의 본성을 우주적 전체속에서 읽으며, 이는 인간을 우리가 욕망하는 것과는 다른 지평에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주자학은 우리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본성을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은 유전적 편향과 후천적 습관때문에 자각되지 않고,덮여있다" 주자학은 이 덮여지고 때묻은 본성을 지속적 자각을 통하여 벗기고 씻기는 것을 공부와 훈련의 과제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사적 자아는 공적 자아로 변환되며,자아와 타자를 분리하고 있던 장벽이 사라지면서 언간은 타물과의 우주적 소통을 확보한다. 그것을 전통적으로 철학적으로는 物我-如라는 통일로, 또는 문학적으로는 J홈 飛魚뿔이라는 자연 생명의 약동으로 묘사했다. 그것은 동시에 유가적 가치의 중심인 仁훌禮智가 발현되는 體用의 기제이기도 하다. 퇴계는 이런 본체와 공부의 전 과정을 그림 열 폭에 정돈했다. 이 논문은 퇴계가 정리한 주자학적 본체론을 제 1『太極圖』와 제 2『西銘圖』률 중심으로 해설하고, 이어 그것의 회복을 위한 공부의 규모와 방법을 제 3『小學圖』와 제 4『大學圖』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중심 에 지속적 자각의 파지로 번역될 수 있는 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