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교역에 종사하며 문화전달자 역할을 하였던 소그드인들은 조로아스터교를 주종교로 삼았다. 소그드인들이 숭배했던 나나는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여신이 아니었지만 후대에 소그드인들의 만신전에 포함되어 널리 숭배되었다. 나나여신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탄생한 여신으로 긴 역사동안 풍요와 다산, 미의 여신이자 도시의 수호여신, 왕권의 수여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나나여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널리 신앙되었던 인안나-이슈타르와 동일신 혹은 그 후신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본 논고에서는 별개로 발생한 여신으로 보았다. 나나의 가족관계가 인안나-이슈타르와 다른 점, 중기 바빌로니아시대 쿠두루에서 금성의 신 이슈타르와 별도의 신격으로 표현된 점, 그리고 나나의 찬가가 별도로 존재한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소그드의 여신 나나로서 도상이 정립되기 시작한 시기는 쿠샨왕조시기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중앙아시아에 이식되면서 나나는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시벨레, 레아 등의 여신들과 동일시되며 그들의 모습을 차용하여 변모하였다. 쿠샨왕조 시기의 나나도상에는 초생달관을 머리에 쓴 아르테미스형의 나나, 사자 위에 앉은 나나 등이 존재한다. 이후 소그드인이 숭배했던 나나는 쿠샨왕조의 나나와 달리 네 팔이 있으며 성벽관을 쓰고 갑옷을 갖춰 입은 채 사자에 앉은 형상으로 변화한다. 나나는 소그드인의 도시국가인 소무구성 내에서 왕국의 수호신 혹은 특별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특히 초라스미아나 펜지켄트 등에서 중요한 신격으로 숭배되었다. 펜지켄트에서 나나는 심판장면, 지옥장면 등과 함께 표현되어 있어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의 판테온에 유입되면서 내세와 관련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네팔을 가진 나나의 형상은 6세기 이후 소그드인들이 인도의 힌두문화를 적극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개념화되고 추상화된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은 신상으로 제작되지 않았었는데 소그드인들은 인도의 힌두신 도상을 차용하여 새로운 신들의 모습을 창출하였다. 소그드인들은 동서교역의 주역으로 개방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은 그들의 문화 속에도 반영되어 타 지역의 문화적 자극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의 전통과 결합시켜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나나는 이러한 소그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경향을 보여주는 특별한 여신이다.
본 연구는 6세기 중후반~7세기 초 수대까지 중국 경내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의 종교 및 문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무덤 내 출토품과 관련 문헌 자료에 대한 정리를 통해 그들의 중국 내 거주 및 문화 양상을 대략적으로 고찰하고, 이에 대한 연구 경향을 분석한 후,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시론적으로 탐색하였다. 먼저, 6세기 중반~7세기 초 중국에서 활동한 소그드인의 묘지(墓誌)와 무덤 출토 석장구(石葬具)의 기본적 현황을 고찰하였다. 이를 토대로 소그드 상대(商隊) 수령인 ‘살보(薩保)’를 중심으로 중국 내 소그드인의 정착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무덤 내 출토품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를 종교와 문화의 두 측면으로부터 분석했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는 조로 아스터교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교적‧마니교적 요소는 물론 중국적 요소까지도 포함하는 매우 혼종적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그드인들의 석장구가 6세기 후반∼7세기 초의 화북지역에만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시공간적 특색에 주목하고,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해서 짚어보았다.
일본에서 소그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약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소그드에 관심을 보인 동양사학자들은 소그디아나의 역사와 소그드인의 중국 진출 등에 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후 1999년 산서성 태원에서 발굴된 우홍묘(虞弘墓)를 비롯한 소그드인의 무덤이 연이어 발굴되면서, 일본 미호뮤지엄이 소장하고 있었던 석관상위병(石棺牀 圍屛)도 소그드와 관련 깊다는 것이 밝혀졌고, 이를 계기로 중국에서 소그드인이 교역 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종교의 분야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일본의 소그드관련 연구 동향과 주요연구를 살펴보고 그 중 아프라시압의 벽 화 중 한반도 사절단으로 비정하고 있는 M24, 25의 인물상의 연구에 대해서도 선행연구를 통해 도상의 성립과정을 검토해 보았다. 또한 일본 미호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소그드계 석관상위병 중 F석판의 검토를 통하여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하는 소그드인의 장례의식을 표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미호뮤지엄의 석판 중에는 조로아스터교에 바탕을 둔 당시 소그드인의 장례문화를 구체적으로 전달해 주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으며, 소그드 현지에서 발견된 판지켄트 벽화의 장례 장면과 공통점이 확인되기 때문에 피장자가 소그드인이라는 가능성은 보다 확실해 진다. 우리 학계에서도 근년 소그드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일본 학계의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경우가 확인된다. 따라서 본고의 검토를 통해 일본의 소그드에 관한 주요연구와 소장품을 소개함으로써 관련 연구자들에게 누락된 자료를 제공하고 더불어 새로운 소그드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