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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부여 송국리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석관묘의 주요 특징과 기능 및 성격에 관한 문제를 재검토한 것으로서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변지역의 사례와 비교되는 송국리유적 석관묘의 특수성은 대형화된 묘실 개석과 매장주체부, 그리고 벽석부의 보축시설 및 부장품의 문화적 상이성 등으로 요약된다. 둘째, 동검 부장묘로서의 1호 석관묘와 묘역내 중심적 입지에 자리한 5호묘간의 어색한 배치관계에 미뤄 볼 때, 그간 묘역내 중심묘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어온 송국리 1호 석관묘의 시간성과 성격문제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셋째, 송국리 5호 석관묘는, 유구 자체의 제반 특징과 주변 지역 유사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한 결과 고인돌적 특성이 강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아울러 5호묘(추정 고인돌) 출토 이중구연 단사 선문토기를 시간성의 문제가 아닌 문화 성격적 측면에 보다 집중할 경우, 그것을 축조한 사람들의 성격을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넷째, 묘역의 형성과정은 구릉 정상부 방대상의 돌출부 중심에 자리한 5호묘와 그 서북쪽 4호 석관묘 및 미조사된 6호 석관묘 등의 관계가 성립된 이후(先), 중심묘적 기능을 가진 5호묘의 축선을 기준 삼아 1호 석관묘 및 그 사이의 2·3호 석개토광묘가 들어서면서 (후), 최종적으로 하나의 성토부가 구획되어 묘역화 되었을 것으로 본다. 다섯째, 송국리문화권내에서 고인돌적 전통이 수용되는 과정에는 송국리집단의 주도적 역할이 예상된다. 아마도 고인돌문화 속에 내재된 신앙과 의례풍습 등을 존중해주는 한편 서로 공유함으로써 두 집단간의 정신문화적 측면에서의 동화를 모색한 듯하다. 결론적으로 송국리 1호 석관묘와 5호묘의 관계는 고인돌 축조집단의 신앙체계나 문화적 관습 등을 수용한 송국리집단의 배려로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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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1.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 및 그 학술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기 위하여 작성되었다. 먼저 최신 발굴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시기와 성격을 살펴본 결과, 최초 대지 조성과 함께 방형계 주거 집단의 점유가 시작된 이후 원형계 집단이 등장하면서 대지 조성면을 목주열이 자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으나, 기존의 주거형을 일부 인정하여 양자를 모두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점유 기간의 공백은 없었으며, 전체 기간도 짧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송국리유적에서는 유력자 또는 유력 집단의 존재가 상정되는데, 그들은 대규모 노동력 동원, 식량 조달 및 분배에 대한 적극적 개입, 제사권 장악 등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였을 것이다. 일반 주민들도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여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으며, 이와 같은 내부적 안정을 바탕으로 주변 유적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 취락으로 성장하였음이 짐작된다. 다음 송국리유적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 번째로 송국리유적의 발굴 및 보고는 송국리유형과 송국리문화를 설정케 한 기초 자료의 최초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학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최초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다른 유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특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편이 바람직하다. 다음 두 번째로는 완전한 형태를 갖춘 대단위 취락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를 들 수 있다. 송국리유적은 점유 기간이 청동기시대 중기라는 시간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특정 시기의 취락 구성 원리나 해당 기간 내에서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데에 양호한 자료를 제공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조사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는 측면에서의 학술적 발전 가능성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조사 기법의 발전과 더불어 앞으로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가 획득될 것이 분명한데, 이것이 다른 유적과 비교할 수 없는 송국리유적의 가장 큰 학술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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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송국리유적의 남서쪽에 해당하는 54지구는 1974년 이래 가장 집중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이다. 특히 서쪽으로 뻗은 舌狀의 구릉성 대지는 주변조망이 용이한 곳인데, 삭토와 성토공사로 대지를 정지, 확장한 후 목책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시행된 조사를 통하여, 목책으로 인식되었던 주열의 성격이 대형 굴립주건물로 판명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특수한 구획시설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이 시설은 대지의 북동쪽과 남동쪽에 각각 11×1칸의 대형 굴립주건물을 배치하고 건물의 주위와 대지의 서쪽을 견고한 鬱柵으로 둘러싼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다. 건물을 둘러싼 울책의 내외에 前庭과 廣場을 두고 망루로 추정되는 주혈군과 1×1칸의 굴립주건물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이 공간이 취락 내에서 특별히 구별된 공간으로서 격리·보호·방어적 성격과 함께 공공 집회를 염두에 둔 광장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송국리 취락이 수전 농경을 기반으로 형성된 취락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형 굴립주건물은 곡물을 저장, 보관하는 고상창고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와 함께 농경과 관련한 의례행위도 함께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송국리취락의 특수공간은 생산물의 저장·관리공간인 동시에 의례공간으로 판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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