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밴튼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1856- 1922)은 한국개신교 선교 초기에 활동했던 미국북감리회 선교사였다. 그는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 불리는 헨리 아펜젤러보다 두 달 먼저 한국으로의 선교파송과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헨리 아펜젤러 (Henry G. Appenzeller, 1858-1902)보다 서울에 먼저 입성하여 초기감리교 선교의 토대를 마련한 선교사였다. 특히 그는 제중원에서 한 달 정도 의사로 활동한 후, 감리교 최초의 선교병원인 시병원을 설립하여 의료선교사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또한, 아현교회, 상동교회, 동대문교회를 설립하는 등 복음전도 선교사와 선교 관리자로 도 활동하였다. 그리고 성서번역과 문서선교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선교의 분야에서 한국개신교 선교를 위해 기여하였다. 하지만 1907년 친일 성향을 지닌 매리멘 해리스(Merriman Colbert Harris, 1846-1921)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감리교를 떠남으로 한동안 감리교 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그의 생애와 의료활동을 중심 으로 그가 남긴 선교의 유산과 교훈을 다루고자 한다.
메리 F. 스크랜턴 선교사는 조선 말엽 개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시대의 요구를 이해하고 이를 선교에 접목시킨 선교사였다. 특히 그녀는 교육과 의료선교를 통해 사회 변혁을 꾀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에게 기독교교육을 통해 인권을 회복하고 여성의 가치를 고양시킨 여성교육의 선구자적 삶을 살았다. 스크랜턴은 기울어가는 조선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조선의 여성들에게 조선인으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했으며 조선의 미래를 당당하게 세워갈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계몽시켰다. 그녀의 선교적 열정과 헌신, 그리고 용기는 어둠에 쌓여 있던 조선에 한줄기 빛이고 희망이었다. 또한 복음의 불모지 조선 땅에 개신교의 여명이 밝아오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