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고의 주제는 통일신라시대 성곽에서 출토되는 기와의 해석 방법에 대한 고찰이다. 기와는 타 유물에 비해 출토량이 대량인 점, 용도가 다양한 점, 사용 기간이 장기간인 점, 여러 단계의 기와가 동시에 폐기되는 점, 재사용과 재활용의 문제 등 고고자료로서의 기와 가 가진 특수성으로 인해 통시적·공시적 해석에 난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출 토 맥락이 명확한 일부 유적의 출토 사례와 기존의 기와 분석 연구 성과 등을 토대로 통일신 라시대 성곽 출토 기와의 해석 방법을 고찰해 보았다. 동래고읍성지의 기와 출토 사례를 통해 토성 초축의 상한 연대는 8세기대, 1차 수축은 9 세기대로 추정되고, 지구별로 축조 시점이 상이할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었으며, 수축 과정 에서의 기와 재활용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와의 재활용에 대한 해석은 성곽이나 건물지의 여러 출토 사례로 볼 때 유적의 폐기에 이어진 자연 탈락으로 인한 퇴적이나 산포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으며, 이에 따 라 ① 시기의 한정성, ② 타 유물 혼입 여부, ③ 기와의 잔존상태, ④ 해당 층위 외의 퇴적층 에 포함된 기와 및 폐기 시점의 기와 노출상태와의 비교 등을 고려해 출토 맥락과 용도(자연 폐기 또는 재활용)를 해석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성곽에서의 평기와 사용을 위계의 반영으로 해석하는 문제는 기와의 사용 유무에 따른 상대성, 장식기와 사용 여부에 따른 상대성이 있으므로 인접한 동 시기 유적과의 상대적인 비교 분석이 필요하며, 사례로 부산 배산성과 낙민동유적의 출토 기와 양상을 비교하여 거 칠산군의 치소로서 가진 배산성의 성격이 사회·경제·문화의 중심이라기보다는 행정·군 사적인 거점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출토 기와의 특징에 대한 해석 방법은 기존의 평기와 분석법에 더해 삼국~통일신라시대 의 평기와 제작법 전개를 4단계로 제시하였고, 특히 통시적인 해석에 가장 중요한 속성인 타날판 크기의 오독 사례로 아차산성과 배산성을 들고, 타날판 복원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 시하였다.
본고에서는 먼저 문무좵신문왕대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주좵소경의 성을 구체적으로 비정하고 그 특징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신라-당 전쟁기에 축조된 漢山州晝長城,國原城(옛 薍長城)은 각각 남한산성과 대림산성에 비정할 수 있었고, 신문왕대에 축조된 주좵소경의 성 역시 평지 시가지 인근의 산성으로 파악하였다. 이들은 입지와 규모로 보았을 때 삼국 시대에는 거의 요구되지 않았던 지방 도시 거주 지배층의 피난성 기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성벽의 양상은 오히려 기존의 거점성에 비하여 정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따라서 이 시기 성벽 축조의 표준을 보여주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편 소경의 중심 지역에 나타나는 평지 토성은 신라 말이나 대체로 고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통일기의 坊구획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이 무의미해진 시점에, 상시적인 방어 시설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조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라-당 전쟁기에 축조된 한산주 주장성이나 국원성(옛 완장성)은 실제로 한산주 및 국원소경에 거주하고 있었던 왕경인들의 장기적인 입보처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다시 평지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정비되었을 것인데, 한산주의 경우에는 8세기에 들어 기존의 거점성인 이성산성이 새로이 정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국원소경의 경우에는 현 충주시내에 새로운 시가지가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한산주에서는 9세기에 들어 이성산성보다는 다시 남한산성이 활성화되는 양상이 나타나며, 그보다 늦은 시기에 국원소경에서는 평지 시가지를 둘러싼 부정형의 토성이 조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