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학생들의 논증을 인식론적 (사고과정) 및 심리학적 (사고유형) 관점에서 탐색하여 어떠한 사고과정 및 유형으로 교사가 학생들의 논증 형성 능력을 향상시키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35년의 교사경력을 지니고 있는 교사 및 그의 26명 학생의 과학수업 60시간을 관찰하고, 전사하였으며, 전사한 학생들의 논증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두 개의 도구, 즉 인식론적 및 심리학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이 연구 참여자인 교사는 학생들의 논증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하여 특별한 목적으로 개발한 명시적인 교수법 "주장-근거 교수법"을 수업 시간에 활용하였다. 논증을 두 개의 다른 관점으로 분석해 본 결과, "보기" 또는 "예"를 이용한 사고과정에서는 "정교성" 사고유형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모든 탐구의 시작인 가설을 세우기 위해 학생들은 "귀납" 사고과정으로 "일반화" 사고유형을 통해 탐구의 시작단계인 본인들의 "주장"을 형성하였다. 좀 더 높은 수준의 논증은 다른 지식이나 경험을 통한 개념의 "일관성" 사고 과정을 통해 교사의 도움에 힘입어 학생들이 "설명"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논증 기회에서 확인된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스스로 논증을 형성할 수 잇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그리고 학생들의 논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좀더 학생들의 사고과정을 확장시켜 주는 정교자 (elaborator), 그리고 학생들의 논증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논증을 추적하여 발전시켜주는 멘토로 확인되었다. 논증 본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사들은 학생들이 과학의 참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도록, 논증 기회를 제공하는 명시적인 교수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글은 개종 후 종교적 색채가 짙어진 엘리엇의 후기시에 나타난 종교적 경험의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이다. 종교적 경험은 특정 종교의 도그마나 교리가 규정하는 대로가 아닌 인간이 압도적 권위나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에 대한 관계에서 느끼는 정서적 경험으로 이 글에서는 오토와 제임스의 설명을 기초로 삼았다. 이 경험에서 인간은 대상인 절대자 앞에 나약한 피조물로 스스로를 인식하며 세계관과 태도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융은 이 경험을 심리적 공식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의식이 그 근원인 무의식의 중심, 즉 ‘자기’에 노출되면 절대자 앞에선 ‘피조물 느낌’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엘리엇에게 이 같은 종교적 경험이 실재했는가 하는 문제는 정확하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는 이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심리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종교시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도 시인의 종교적 경험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그의 시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경험을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특히 「동방박사의 여행」과 재의 수요일에서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지며 동시에 그의 시는 산문과 달리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이 자주 드러내기도 한다.
이글은 기독교에 토대를 둔 엘리엇의 정치적 입장이 제3세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시극 ��원로 정치인��에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요소들이 발견된다. 먼저 극의 등장인물들은 중미에 위치한 국가인 산마르크 공화국을 영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매우 무질서하고 타락한 곳으로 치부하며 거기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폄하를 노정하고 있다. 이처럼 세3세계의 국가는 당시 많은 문제를 노출했던 유럽인들에게 집단적인 그림자로서 작용했으며 엘리엇도 그에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극의 주인공을 비롯한 남자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여성과의 조화롭고 결실을 맺는 관계에 실패하고 있다. 엘리엇의 전기를 반영하는 듯한 이 특징은 배우자 원형, 즉 아니마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특징은 정치적으로는 어머니원형이 지배하는 단계, 즉 권위에 복종하고 타자의 가치에 제한을 두고자하는 보수적 성향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원로 정치인��은 작가가 의도한 원만하고 이상적인 삶의 정리가 아닌 작가와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그와 관련된 제3세계인으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정치적 태도를 담고 있다 하겠다.
So obvious are T. S. Eliot’s conservative tendencies that the only valid question about his politics seems to be how conservative he was. He declared his own position so in religious, political and literary sides, and most of his literary works support this position quite positively. But The Waste Land and his other early works carry some elements which suggest the poet’s sympathy to liberal causes. His well-known literary theories and techniques including ‘objective correlative,’ ‘union of sensibility,’ and ‘collage’ also reflect Eliot’s belief in reason. This advocacy of reason is parallel with liberal and democratic tenets against which Eliot showed overt abhorrence. Psychologically Eliot can be seen to be on the stage of alienation around the time of the composition of his early works including The Waste Land. One is necessarily subject to the drive to move away, at a stage of growth, from the mother or the world one used to belong to in one’s initial phase of life. Eliot gives in to the transcendental in Four Quartets and Ash-Wednesday, suggesting he has returned to the dominance of the mother in infancy. It is questionable how Eliot looked at the difficulties of the underprivileged then suffering from the world order he supported with his increasingly conservative outl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