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은 1992년 감독 데뷔 이래 지금까지 당대의 현실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성과 예술성, 새로움과 낯섦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오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왔다. 특히 2003년 개봉한 올드보이는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평을 받았으며, 이듬해 제 57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였고, 2013년 미국에서는 리메이크 작품이 상영되 기도 하는 등 지금까지도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이자 한국 영화 전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입각하여 바라볼 때 그 서사구 조와 미학적 기능의 상동성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25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와 동서양이라는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일한 구조의 작품이 수신자들의 내면에 동질의 정서적 울림 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현대 매체의 비극, 나아가서 문화콘텐츠의 창작에 있어서도 고대 희랍비 극의 덕목을 참작하고 반영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성이 ‘아리스토텔레스 비극 이론의 미학적 재현’에 있다고 보고, 이에 관해 보다 구체적,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리스 고전 비극의 전범인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의 상동성 을 고찰함으로써 그 대표적 양태를 ‘얽힘⋅풀림과 수수께끼의 플롯’, ‘말(言語)의 신탁과 복합적 플롯’, ‘단일한 전체와 아이러니의 플롯’의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한편, 극적 주체의 사회적 자질과 윤리적 자질, 그리고 ‘하마르티아’의 윤리적 측면에 관해서는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 이의 재현양상이 상이하다. 고대의 수신자들에 비해 현대 수신자들이 극적 주체의 사회적 자질 과 윤리적 자질에 대해 보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포클 레스가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시킴으로써 헬라인들의 내면에 신성성을 회복하려 했던 것처럼, 박 찬욱의 영화에서도 비극적 주체의 파멸은 극 안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인의 일상 속에 끊임없이 재생됨으로써 수신자의 내면에 연민과 두려움,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자질을 지닌 극적 주체의 파멸은 그 외연을 확장할 때 일상의 파멸이며, 다시 인 간의 파괴이자 파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오이디푸스 왕」과 올드보이의 정 서적 상동성은 회복된다. 올드보이는 고대 서양 문명의 핵심적 문화유산이 21세기 동양에서 현재적 가치로 재현된 것이며, 다시 서양으로 수출되며 글로벌 문화를 창조적으로 재구한 한국 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본 연구는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플롯 이론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오이디푸스 신화의 직계 상속자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의 상 동성을 정치하게 고찰함으로써 두 작품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현재적 가치까지 제시 했다는 것에서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연구의 초점이 올드보이의 ‘영화’ 매체로서의 특성과 가치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다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이에 관한 연구 역시 향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마 28:18-20, 막 16:15, 눅 24:47, 요 20:21, 행 1:8)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생명의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 하라는 것이다. 이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 고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는 이 복음을 증거 하는 역사였다. 이 동일하고 고유 한 복음은 인류의 다양한 문화 속에서 증거 되어 왔다. 히브리, 희랍/ 로마 문화 속에서 기록된 이 복음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드리는 인간의 문화는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지역 별로 다양하다. 본 연구는 이 동일한 생명의 복음을 다양한 문화 속에 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을지에 관하여 살펴본다. 이미 조지 헌터가 주장한 바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기 독교 복음의 효과적인 증거를 위하여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설득으로 이해하였다. 그에 의하면, 청중은 세 가지 방법에 의하여 설득 당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메시 지를 전하는 화자의 인격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으며 화자의 신뢰성 을 통하여 설득 당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메시지 자체의 논리성에 의하여 설득 당 할 수 있다. 메시지는 연역적으로도 전개될 수 있으며 귀납적으로도 전개될 수 있다. 셋째,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의 변화에 의하여 설득 당할 수 있다. 메시지가 강렬하게 청중의 감정을 움직일 때 그들은 설득 당하며 의지를 갖고 화자가 주장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다.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화자는 교차문화적 선교사이다. 교차문화적 상황 속에서 선교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 아 성육신적으로 복음을 증거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선교사는 자신이 섬기기 위해 부름을 받은 해당 문화를 존중하고 그 문화 속에 사는 토착민을 사랑해야 한다. 민족적, 문화적 우월감을 버리고 그들 과 함께 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과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그 일치 속에서 성육신적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선교사가 전하는 유일 한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이 생명의 기쁜 소식을 받아드리는 자는 살고 거부하면 죽는다. 그러나 이 복음의 메시지는 청중이 알아 듣기 쉽고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 복음의 메시지는 토착민은 물론 토착민이 구성하고 사는 사회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이 복음은 화자중심이 아니라 청자중심으로 전해져야 한다. 선교사는 자신의 문 화적 형태-교단적 그리고 교리적 특징-를 받아드리라고 토착민에게 강 요할 것이 아니라 순수한 복음을 그들의 문화적 형태를 통하여 받아드 리도록 격려해야 한다. 교차문화적 상황 속에서 효과적인 복음증거는 기독교의 토착화를 요구한다. 기독교의 토착화는 궁극적으로 토착화를 통하여 선교지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선교지에 토착 적 교회들이 세워질 때 이루어지며 확장된다. 건전한 토착화는 복음 과 문화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복음을 문화적 형태를 빌려 의미 있게 전하되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하지 않도록 성령과 성경의 안 내를 받는 노력을 요구한다. 효과적인 교차문화적 복음증거는 토착민 의 문화적 형태를 통하여 복음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같이 현대 기독교의 교차문화적 복음증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기초하여 그의 설득 모드를 활용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복음 증거를 기대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삼대요소인 화자, 메시지, 그 리고 청자가 구성되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듯이 교차문화적 선교에 있 어서도 선교사, 메시지, 그리고 토착민이 준비되어야 복음증거가 가능 하다. 화자로서 선교사는 종으로서의 인격을 갖추고 섬길 때,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메시지는 의미가 분명하도록 논리적으로 제시 될 때, 그리고 청자인 토착민이 메시지를 자신의 언어와 문화적 형태를 통하여 들으며 감정을 포함하여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 한 회심이 일어나며 사회가 아울러 변화한다. 그리고 변화된 토착민들 이 중심이 되어 토착적 교회가 세워진다. 이 토착적 교회들이 선교지 여러 곳에 세워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며 “여호와의 영광을 인 정하는 것” (합 2:14) 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It seems obvious to the contemporary eye that modern technology has finally brought chaotic abundance to the present world, and provided a superficial civilization over the last century. Nevertheless, such an argument about the external phenomena of present culture does not help constitute the right track of modern technology and architecture. Rather, this discussion comes to re-signify the importance of critical metaphysics as a part of man's cultural activities, especially the ontological meaning of them. In this point, the research is intended both to re-certify the essential nature and mythic value of technology through reviewing the ancient and modern philosophical contemplations, and to examine its architectural condition against the rapid expansion of commercial material-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