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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스크랜튼은 기숙제 학교인 이화 학당과 보구여관이라는 여성 전용 병원 그리고 공옥여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매일학교를 세우고 여성교회와 부인성경학교를 세워 여성을 교육하고 여성지도력을 개발했다. 이것은 여 성교육 활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화기의 한국 여성들에게 ‘여성의 공간’ 의 창출이었고, ‘여성 주의’ 의식의 개발이기도 했다. 특별히 그녀가 설립 한 이 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이었던 이화 학당은 스크랜튼이 뿌린 ‘여성주의’ 의식이 싹을 틔우고 태동하는 중요한 묘판이 되었다. 이화학당 이라는 기독교적 여성 고등 교육 시설 안에서 개화기 한국 여성들은 사물 을 규정하고 명명하며 자신과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여성주의 의식’에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자기의식을 현실화하여 당당한 사 회적 전문인으로서 혹은 민족 독립 운동가라는 정치적 주체로서 자립해 가 게 되었다. 이화라는 공간 안에서 여성들은 무지로부터 해방되었고 가정이 라는 공간에서 해방되었고, 아내, 딸, 어머니라는 전통적인 역할로부터 해 방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여성을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체로 세우고 사회적 존재로 확장해 가는 의식해방을 이루었던 것이다. 개화기 이화학당에서 태동된 ‘여성주의’ 의식이 가부장제적 성적 위계질서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개화기의 ‘여성주 의’ 의식은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의식이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저변을 이룬 우리 나라 ‘초기 여성주의’로서의 의의가 크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크랜튼은 이 나라 여성 교육의 개척자임과 동시에 ‘여 성주의’ 의식의 개척자이자 여성 운동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