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태준의 역사‘소설’ 황진이를 알레고리의 일종으로 간주하면서 조선 시대의 한 여성이 보여 준 삶의 궤적을 섹슈얼리티의 역사적 변동 과정과 여성적 현실의 변화 과정이 드러나는 우화적 비유 체계로 다루었다. 결국 역사‘소설’ 황진이는 젠더의 세계에서 섹스의 세계로 나아가는 우화적 여행으로서의 이른 바 ‘황진이 오딧세이’를 통해 감정과 육체가 분열되지 않은 진정한 남녀관계란 불가능하다는 환멸과 허무의 알레고리가 되었다. 물론 이태준의 황진이는 진정한 남녀관계와 사랑의 이상이 좌절되고 만 절망적 현실 을 환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젠더의 세계와 섹스의 세계를 넘어선 세계, 즉 감정과 육체가 분열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세계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음도 분명하였다. 그 세계는 황진이라는 환멸과 허무의 서사가 보존하는 낭만주의적 기운과 무관하지 않은 세계였는데, 말하자면 우리는 죽은 젠더의 세계와 무책 임한 섹스의 세계가 지양됨으로써 에토스가 에로스의 혼란을 제어하거나 에로스가 에토스에 역동성을 부여 하는 세계를 황진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을 다룬 고소설 「임진록」에서 승군의 활약은 휴정과 유정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영규가 승려로서는 맨 먼저 언급되지만 활약에 비해 소략하게 다루어졌고, 처영은 조선후기에 대표적인 승장으로 언급될 만큼 활약이 컸지만 「임진록」에는 이름만 언급되는 정도로 그쳤다. 승려와 관련하여 「임진록」에서 특히 주목되는 사건은 유점사에 왜군이 난입하여 재물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상황에서 유정은 태연하게 왜장을 대하면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담화로 좌지우지하여 도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임진록」에 다른 의승장들의 전투 성과가 생략되거나 약화된 것에 비해 유점사 사건이 자세하게 서술되는 것에서 승려에 대한 작자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전투보다는 담화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서 다른 의병장과 다른 면모를 파악한 것이다. 이 사건이 국중 한문본에는 휴정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젊은 유정보다는 노승 휴정이 더 적합하다는 의식이 작용한 듯하다. 이는 군담소설의 노승 이미지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군담소설에서 노승은 주인공의 출산을 예견한다든지, 주인공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구출하여 안식처와 교육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노승 이미지는 「임진록」의 승려 형상에서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임진록」의 찬술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군담소설과 영향 관계를 단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역사계열 한문본 「임진록」이 17세기에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우세하므로 역사계열 한문본 「임진록」에 보이는 승려 형상이 18세기에 성행한 군담소설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맹자가 아내의 무례함을 싫어하여 내쫒았다(孟子出妻)’는 이야기는 긴 역사를 통해 호사가 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列女傳』, 『韓詩外傳』, 『荀子』 등 여러 문헌들 속에서는 이 고증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를 자신들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전고로서 소비해왔다. 궈모뤄(郭沫若)는 역사소설 속에서 다시 이 이야기를 수양에 방해가 되는 아내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한 맹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인간적인 고뇌를 알아챈 아내가 스스로 집을 나간 것으로 재구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맹자의 고뇌, 남편에 대한 아내의 존경과 간절함, 그리고 성현이 되고자 하는 남편의 정진을 위해 선택한 희생 등 복합적인 심리들을 담아내면서 기존의 인식들을 비틀어놓았다. 亞聖으로서의 정형화된 형상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가려졌을 법한 맹자의 인간적인 모습은 궈모뤄의 서사를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본 논문에서 살펴본 맹자에 대한 이야기는 팩션 장르를 통해 이루어지는 고전에 대한 파격적 이해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 그 해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얼마나 다양하고 유연한 이야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시사해준다.
본 논문은 명대의 역적 당새아가 청대 소설 속에서 돌연 女仙이자, 나라를 구하는 영웅의 형상으로 변신한 데 주목하고, 그녀가 소설 속에서 극적인 변신을 이루게 된 원인을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실존인물 당새아의 행적 및 그녀에 대한 명대인의 평가를 시기별로 살펴보고, 그런 다음 청대소설 『여선외사』 속 당새아의 형상을 분석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당새 아형상의 극적 변신의 이유를 소설의 창작 동기 및 평어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역적 당새아의 소설 속 변신은 청대 초기의 사회적 배경, 즉 왕조 교체로 인해 명대에 발생했던 정난 지변을 재조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 논문은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된 1960∼1970년대 노동자의 육체적 힘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농업 중심의 산업체제제에서 육체적 힘은 남보다 우월한 노동력을 발휘하였으며, 이는 남보다 더 많은 노동 생산성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기계 중심의 공장제 산업에서 육체적 힘은 그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김승옥의 「力士(역사)」와 황석영의 「장사의 꿈」은 보통사람보다 탁월한 힘의 소 유자가 자본주의 체제하의 도시적 삶에 대한 대응의 방식과 좌절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힘을 헛된 노동에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力士(역 사)」의 서씨와 타락한 도시의 욕망에 순응하다 좌절하는 「장사의 꿈」의 일봉 모두 산업화 시대의 도시적 삶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기계 중심의 산업화 시대에 육체적 힘의 가치는 약화되었으며, 이들의 힘은 교환가치로 전락한 노동력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