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30년대 한국의 비평가, 김환태를 중심으로 비평의 예술과 비평의 교육적 기능이 ‘언어’와 ‘자국어’의 표현과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다.김환태를 중심으로 박용철, 박영희, 윤기정, 김문집 등의 비평은 일제하의 문단에 “세계 설명”이라는 자각을 하게 하였다. 비평은 곧 예술로서 인간성의 성숙과 세계관을 넓히는 데 박차를 가하였던 것이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표현중심의 KAPF의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수문학의 금자탑을 세운 것은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전거로 주목하고 있는 사실이다.순수문학은 새로운 세계를 설명하고 수용할 것을 전제한다. 새로운 세계로 열려있는 지평에서 ‘자국어’에 대한 관심과 예술적 표현에 무게를 두고 영원불멸한 가치를 창조하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 세계, 그리고 인간 관계의 창조를 주장한다. 이는 성리학적 측면에서 통섭의 원리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환태는 참신한 비평적 국면을 설정하여 순수문학의 기치를 확고히 하였다. 특히 인상주의 비평과 유미주의(예술지상주의) 비평, 그리고 형태주의 비평을 통하여 ‘열정’, ‘관조’, ‘공감적’, ‘미적 태도’, ‘미적 경험’, ‘변별력 있는 주목’, ‘활동’ 등을 성리학Neo-Confucianism적 바탕에서 수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비평의식을 정립하고 실천하였다.비평은 성숙된 개성의 발견, 즐거움과 쾌락의 전달, 공감적 감각을 실생활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임을 감안할 때, 비평은 그 시대의 ‘성숙된 인간성의 창조’, ‘열정과 즐거움의 공간 창조’, ‘실생활의 질적 변화와 창조’라는 교육적 기능을 함축하고 있는 장르임을 알 수 있다.1930년대 김환태의 비평은 순수문학의 터전을 바탕으로 인상주의와 예술지상주의, 형태주의의 요소를 수용하여 그 시대와 사회에 교육적 기능을 발휘하였다. 특히 당대의 비평의식에 미적 태도, 미적 경험, 열정, 관조 등에 대해 주목하고 세계관의 설정과 주관의 성숙을 논구함은 성리학의 이원적 요인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평의 교육적 요건은 시대와 민족, 그리고 제반 환경의 교육적 기능을 자각하고 실천한 것으로 현재 우리의 교육 현장에 되살려야 할 것이다.
The paper compares Yeats and Renoir. In his Autobiography, Yeats mentions Manet and Monet in passing, but by the time he received his Nobel Prize for literature, he has formed a clear idea of French impressionism and knows painters, such as Monet. Though Yeats has never touched on Renoir, he is very much like him, sharing the same poetics of art: the heavenly vision of the world, and puts it into practice in his works, such as “The Lake Isle of Innisfree.” which is the main focus of my study in this paper. Then I try to establish a link with Renoir. Like Yeats, he regards art as an expression of heavenly vision, turning his landscapes into Heaven on earth; his nudes into a unionizing of nature and man. It is the poetics of Unity of Being in Yeats's term. Renoir in his later life suffers from severe physical pain, being wheelchair-bound because of his rheumatism. Despite his personal hardship, Renoir never wavers and aims to transform the worldly into the heavenly. His painting is, thus, a manifestation of his beautiful vision of the landscapes of the other world he will live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