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개최된 유엔지명표준화총회 이후 ‘동해’ 지명 표기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동해 표기에 관한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며 다수의 논문과 책자가 발간되었다. 하지만 ‘Japan Sea’로 표시된 해역의 범위에 관해서는 정작 관심이 적은 편으로 제주도 서단과 진도 앞바다를 연결하는 선부터 부산 앞바다에 이르는 대한해협 해역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연구는 2002년 회람된 IHO S-23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초안에 첨부된 지도를 분석하였다. 1~3판과는 달리 1986년과 2002년 초안에는 바다지명에 계층이 도입되어 있다. 대한해협이 ‘Japan Sea’에 포함되어 있음을 새로이 인식하고 그 배경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1905년 러·일 전쟁 중에 작성된 조선해협 경계 작전도의 경계선과 유사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본해의 일부로 대한해협이 포함되기 시작한 배경에 대한 가설은 러·일 전쟁 후 일본군부가 대한해협의 승리를 일본해 해전의 승리로 선전한 것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후 근대 일본 사료와 IHO의 문서들에 대한 사료검토를 통해 가설이 확실하게 증명된다면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에서도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는 안용복의 2차도일의 성과와 일본정부의 안용복 업적을 폄훼에 대해 논증하였다. 안용복은 2번에 걸쳐 도일하여 호키주태수에 고발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영 토임을 확답받았다. 그런데 현재의 일본정부는 안용복은 관직을 사칭하고 월경한 범법자이고, 조선국의 대표도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조정에서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받았다고 하는 안용복의 진술은 신뢰할 수 없다고 폄하했다. 또한 도해금지령은 울릉도에 국한된 것으로 독도에 대한 도해금지령은 내리지 않았다고 사실을 날조했다. 사실은 안용복의 1차도일은 일본어부들의 울릉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조선과 막부 사이에 울릉도와 독도 를 둘러싼 영유협상을 하도록 했고, 최종적으로 막부가 돗토리번에 소속을 확인한 후 일본어부들의 도항을 금지시키고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하였다. 2차도일은 1696년 1월 막부가 조선영토임을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루고 있는 대마도로 하여금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조선정부에 알리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안용복은 1차도일로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확인받았고, 2차도일로는 대마도로 하여금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역할하였음을 논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