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성찬을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 본디 의미를 고찰하고, 목회 현장에 적용할만한 ‘선교적 성찬’(Missional Eucharist)을 예시하여 교회의 선교적 동력으로 삼으려는데 있다. 이 시도의 신학적 근거는 첫째, 존 웨슬리의 성찬신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웨슬리는 복음 설교자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국국교회의 사제로서 고교회(High Church) 전통의 성례주의자였다. 그가 성찬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거룩한 은총에 의한 회심의 변화가 여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적 성화의 사건으로 선교적 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성찬 그 자체가 이미 선교적일 뿐 아니라 흥미롭게도 그 의미에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신학적 관점들이 농후하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찬은 은총에 의한 회심 체험 이나 변화의 부재로 ‘명목상의 성찬’(Nominal Eucharist)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의 내적 동력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추구하는 성찬이 되려면, 감성과 이성, 전통과 신학 그리고 통전성과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본고는 ‘선교적 성찬’을 통해 선교적 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이다.
본 연구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관한 신학적인 유산과 그 내용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위대한 신앙의 거장들은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실천하며 세상의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특별히 웨슬리는 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큰 사명이 복음전도라고 생각하였으나, 동시에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라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웨슬리의 이해는 창조와 선행은총, 칭의와 중생, 성결과 회복 등 구원과 연관된 중요한 신학적인 주제 안에서 체계화 되었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개인을 구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4년 로잔 선언은 이러한 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계를 재정립하며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책임을 균형 있게 실천할 수 있도록 신학적인 체계를 세우고 구조적인 변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면, 한국교회를 갱신할 수 있는 큰 동력이 여기서부터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복음전도의 모형으로 ‘사랑’에 관해 고찰하여, 이 이론이 초대교회 복음전도의 토대가 되었음을 제시 하였다. 또한 이것은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복음전도의 원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사상과 사역을 중심으로 밝히었다. 계몽주의와 회의주의가 만연했던 18세기의 영국은 이신론 이 기독교의 신앙을 위협하는 등, 복음전도를 실천하기가 너무나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웨슬리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전도의 원리를 계승하고 실천하여 초대교회와 같은 위대한 복음전도를 할 수 있었고, 영국 사회는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이 시기에, 다시 신앙의 개혁이 일어나고 교회가 갱신되기 위해서는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본질로 되돌아가야 한다. 복음전도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가르쳐주 시고 초대교회가 계승한 복음전도의 모형이 오늘날 교회에 온전히 계승될 수 있다면, 이 시대에도 위대한 복음전도의 열매가 맺혀질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의 웨슬리가 그러했듯이!
This study presents George G. Hunter’s church growth insights revealed in his classic, To Spread the Power: Church Growth in the Wesleyan Spirit. On the basis of his insights and interpretations of collected data including interviews, letters, and observation, this study evaluates the mission programs of Anjung Church of the Nazarene. Hunter adopted John Wesley’s ideas and the church growth theories developed by Donald A. McGavran and C. Peter Wagner to produce his own church growth theory. This study attempts to apply Hunter’s church growth insights to a local church, Anjung Church of the Nazarene. This church represents the Korean Nazarene Church (KNC) in this evaluation. (KNC was organized in 1948, although some Nazarene churches were already planted in Pyong Yang and Seoul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unter’s church growth insights were translated into six “mega-strategies.” The six mega-strategies are: 1. Identifying receptive people, 2. Reaching across social networks to people, 3. Organizing new recruiting groups and ports of entry, 4. Ministering to the needs of people, 5. Indigenizing the ministries to fit the culture of the people, and 6. Planning to achieve their intended future. This study discovered some strengths and some weaknesses of the Anjung Church of the Nazarene. The church was comparatively strong in evangelism and outreach, although DGR showed diversity between “poor” growth and “good” growth. The church has grown steadily since it was planted in 1947. In particular, the church was very aggressive in church planting work. However, the church was comparatively weak in cross-cultural missions, although it tried to build two church buildings, one in the Philippines and another in North India. This study presents seven suggestions to Anjung Church of the Nazarene based on missiological analysis and evaluation. In summary, the church needs to carry out holistic mission programs to maintain the balance between proclamation / evangelism and social action / social service. Anjung Church of the Nazarene has a great potential to fulfill the Great Commission and to implement the Great Commandment. The classical purposes of missions are conversion, church planting, and the extension of God’s kingdom. God will be glorified by the local church.
이 글에서는 웨슬리의 저널의 중요성을 제기하면서, 저널의 자료, 즉 일 기(Diary)의 특징과 그 연관성, 저널의 문학특징, 저널의 출판 시기와 주요 내용과 사건, 그리고 저널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는 웨슬리의 생각과 사상 더 나아가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에서 그의 활동을 정리하였다. 이를 위 해, 단순히 신학적인 주제를 따라 추적하는 방법이 아니라, 시간 흐름과 경 과를 의식하는 역사적 방법을 이용하여, 문학적·사회적 정황을 비교하고, 더 나아가 대중문화사의 시각에서 그의 저널을 읽을 것을 제안하려고 한다. 이제까지 한국 신학계에서 웨슬리 저널의 출판 동기와 기록 방법에 대 한 질문이 없을 만큼 웨슬리 연구가 신학주제 중심으로 치우쳐 있었으며, 그 만큼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웨슬리 찾기에 기울어져 있었다. 이 글은 웨 슬리의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모습을 추적하여, 더 입체적인 웨슬리 복원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 글 결론적으로 웨슬리의 저널에서 다음의 사항이 발견됨을 지적한다. 첫째, 그의 신학이 평생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도달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 즉 성결을 목표로 하는 신학이었다. 둘째, 저널을 통 해 메소디스트 부흥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셋째, 웨슬리는 저널을 위해 현상학적인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넷째, 웨슬리 저널을 통해 18 세기 영국의 대중사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널을 통하여 결국 웨슬리 는 메소디스트 신도회가 타락한 세상에 대한 대안공동체라는 것을 보이려 고 하였다.
This paper starts with the preposition that John Wesley’s main theological concern was holiness. Recently, there have been studies criticizing the traditional interpretations of Wesley’s theology that were focused on individual piety; the new studies emphasize the social aspects of Wesley’s ideas and practices. At first, this paper basically agrees that the society-oriented interpretation of Wesley’s theology exhibits its comprehensive dimensions well, and suggests various applications such as social activism and social programs. Due to their social concerns, however, the researchers have ignored the contexts of the passages in which Wesley referred to the word “society,” and, in the end, misunderstood its real meaning. According to its own critical reading, this paper reveals that Wesley’s usage of the term “society” strongly implied the religious society, that is, the community of the people called the Methodists.
While Wesley knew religious societies in the late seventeenth century in England, and tried to follow their rules, he pushed forward his own Methodist Society applied to the newer contexts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The Methodist Society had organized groups and made rules even for the plain, the poor, and the female, all those who were marginalized in English society. Because the Methodist Society gave membership to the people from the whole society, and nourished them spiritually in small groups such as classes and bands, its purpose of reforming the church implied reforming society and the nation.
Considering Wesley’s idea of community of goods, we may search for a clue for reforming Korean churches, and, while doing it, show a more excellent way to live within the whole of society, with the accountability groups in the church. In this sense, Wesley’s theology is still effective not only for Wesleyans, but also for all of society’s memb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