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ODA를 활용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것 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논의는 일본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관점이 우세하지만, 일 본의 ODA 정책이 실제로는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지경학적 전략 에 더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일본 원조 정 책의 전략성을 검증하기 위한 분석틀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정책의 지 정학적 및 지경학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유형화했다. 다음으로 아베 정권기(2012-2020) 일본의 ODA 정책을 양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해당 시기에 미얀마에 대한 원조가 큰 폭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지정학적 이익보다 지경학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임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미얀마 의 사례를 통해 일본의 원조 정책이 어떻게 지경학적 이익을 추구하는지 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한국 또한 동남아시아에서 원조 영 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관민 협력의 지경학적 이익에 주목해야 함을 지적한다.
본 논문은 해양력이 동아시아 해양공간에 미치는 지정학적 파장과 그 성격의 문제를 다룬다. 마한의 도서국가지배론에서 강조되고 있는 해양력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해양력의 지정학적 성격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 식과 함께, 21세기 현재 중국이 도련선 전략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있는 지정전략적 성격과 그 파장의 문제를 조사한다. 지난 20세기를 전후 한 시기에 일본이 해양력에 기초해서 동아시아 해양공간에서 세력권 확장을 기획하는 대동아공영권 정책을 구체화했고, 21세기에는 중국이 도련선 개념을 구체화하면서 동아시아 해양공간을 관리하려는 지정전략을 구사하 고 있다. 중국의 도련선 전략이 미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외교의 해양세력 의존정책이 21세기 현재에도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동해 표기를 둘러싼 갈등의 문제를 동해 수역이 갖는 지정학적 의미로부터 살펴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태평양의 연해로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이 대립한 최전방으로서의 입지적 특성, 환동해 지역경제권의 등장, 동해를 둘러싼 네 개 국가의 정치적 이해와 대립 등의 요인들이 이 지역에 지정학적인 영향력을 끼쳐 왔고, 이것은 영유권, 경제수역의 경계 획정, 그리고 표기 문제의 갈등으로까지 진전되어 왔다. 여기에 지명 표기가 갖는 독특한 정치적 의미가 더해져 동해 표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현재 동해/일본해 표기에 관한 양측의 주장을 고려할 때 세 가지의 해결방법이 가능하다. 새로운 제3의 이름에 합의하는 것, 두 개의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 바다를 분리하여 분리된 바다에 각각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떤 해결이라도 각국의 정치적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동해의 역사는 지정학 이론과 결합되어 전개되어 왔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지정학 이전의 시기인 고대에서 중세까지 동해는 환동해 연안지역 농어민들의 생활(어업과 채집)의 터전이자 무역 및 문물교류의 ‘열린 바닷길’이었다. 근대기, 일본과 조선의 개항기 동안 동해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의 바다였다.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개항된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의 승리를 통해 조선과 동해의 제해권을 장악했고 북방으로 진출했다. 미국과 일본의 환동해를 둘러싼 이러한 제국주의 팽창은 마한의 ‘해양세력론’에 기초해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독일 제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거의 저항 없이 서태평양에 있는 독일 식민지(북마리아나군도, 캐롤라인군도 및 마샬군도)를 재빨리 장악했다. 전쟁이 끝난 후 국제연맹은 일본에 이들 지역에 대한 위임통치권을 주었지만, 일본은 인종주의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을 구축했다. 그러나 결국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일본이 강점했던 식민지와 점령지가 해방되었다. 이렇게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태평양 전쟁의 시기까지는 주축지역의 세력인 독일과 중국이 안쪽초생달지역과 바깥쪽초생달지역으로, 즉 해양으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안쪽초생달지역인 일본과 바깥쪽초생달지역인 미국이 협력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세력의 인종주의적 정책과 문화적 차이에 실망한 일본이 하우스호퍼의 생활권이론을 도입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추진하자 미국과 대립했고, 결국 미국에 패배했다. 이 시기동안 동해는 일본의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바다였다. 맥킨더의 심장지역이론과 더불어 스파이크만의 주변지역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기 위한 미국의 봉쇄정책에 이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은 일본에 의해 림랜드가 통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륙세력인 소련과 협력하였지만, 2차 대전이 끝난 후, 다시 대륙세력인 소련이 림랜드를 통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일본을 해양세력으로서 다시 동맹국으로 끌어들여 대륙세력 소련에 의한 림랜드의 통합을 막았다. 따라서 2차 대전 이후-냉전기 동안 동해는, 특히 냉전의 전환점이 된 한국전쟁 (1950) 이후 남북한이 대치하고 미국과 일본 그리고 소련과 중국이 지원하는 냉전의 바다가 되었다. G2 중국의 등장으로 탈냉전 이후 오늘날의 지정학은 냉전기 소련의 자리를 중국이 대체 한 형세를 이룬다. 즉, 미국은 대륙세력인 중국이 림랜드를 통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양세력으로서 일본과 동맹하여 중국을 포위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동아시아에서의 새로운 미중 신냉전 체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동해는 북한의 나진항과 두만강 유역 도시 훈춘을 통해 동해로의 출구를 마련한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가 개입하는 신냉전의 바다가 될 것이다. 해양의 핵심적 의미는 “연결”과 “소통”에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경쟁과 갈등의 장”, “대립의 장”, “팽창/침략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까지도 동해는 역사적으로 동해를 중심으로 펼쳐져 온 환동해 연안국들간의 지정학적 맥락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 “연결”, “소통”, “협력”보다 “경쟁”, “갈등”, “분쟁”이 동해를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