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출연(연)을 기술․정책․시장 환경 변화 등 외생적 변수를 인지하여 내생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로 두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화학연구원의 탈추격 혁신 노력을 살펴보았다. 화학연은 2000년대 들어 기술혁신 환경의 변화와 PBS 제도 등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조직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장기적인 내부 역량 강화와 기술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 및 R&D 관리체계를 탈추격 개방형 혁신체계로 개편했으며, 오염처리에서 오염예방을 위한 그린화학(green chemistry)을 적극 추진해왔다. 최근에는 지구 재생과 복원을 위한 미래화학신기술로서 블루화학(blue chemistry)을 조직 목표로 설정하였다. 또한 기술개발에서 확산 및 활용으로 R&D 방향을 전환하면서 특허관리 및 기술마케팅을 선진화하였으며 중소기업지원, 사회적 기업과의 협력을 시도하면서 소외질병 치료제 개발, 적조 및 녹조 문제, 구제역 침출수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화학연 사례는 출연(연)의 다중적 지배구조, 예산 및 인력제도의 부정합, 양적 성과 중심 평가시스템 등의 구조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 및 제도 개선 이전에 조직의 다양한 내생적 노력을 통해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출연연은 과학기술 발전을 선도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해 왔으나 최근에는 조직의 경쟁력 문제를 포함하여 그 미션과 역할까지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본 연구는 ETRI를 결정적인 사례로 하여 현재 출연연이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와 어려움을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출연연의 자체 변화 노력도 문제이지만 출연연이 예산, 인력, 평가 등 통제가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TRI의 경우 연구개발이나 특정기술 수준에서는 추격에서 탈추격으로 넘어서고 있으나 우리나라 출연(연) 연구 환경과 실제 일하는 방식은 추격형 체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추격의 대상과 수단이 어느 정도 확실했던 추격기를 넘어 어디로 가야하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불확실한 탈추격 혁신 상황에서는 출연연의 미션 및 역할, 예산·인력·평가 체계, 사업기획 체계 및 프로세스 방식 등이 새롭게 변화될 필요가 있다.
한국의 혁신체제는 모방학습 기제에 기초한 추격형 혁신체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개념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탈추격형 혁신체제로의 전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탈추격`` 연구는 한국 혁신체제 내에서 발흥하는 새로운 형태의 혁신활동과 혁신주체간 관계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틀의 필요성에 부응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탈추격혁신활동은 후발산업국가의 기술능력 축적에 따라 추격대상이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혁신경로를 개척하는 혁신활동이며, 기술역량의 축적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는 다른 조직 및 제도적 배열, 사회적 규칙의 형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탈추격 연구는 제도론, 진화이론, 발전론의 이론적 전통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후발산업국인 한국에서의 탈추격 혁신활동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틀의 정립과 향후 연구 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의 脫추격형 기술혁신활동 유형과 특성을 살펴보았다. 脫추격형 혁신활동 유형은 기술심화형, 신기술기반형, 아키텍처 혁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례연구 결과를 보면, 기술심화형의 경우 모방 기술에 의거한 지속적인 능력축적이 혁신활동의 토대가 되었다. 신기술기반형은 배태조직에서 수행한 기초연구, 아키텍처형은 배태조직에서 획득한 시스템 아키텍처에 대한 지식이 脫추격형 혁신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또 기술심화형의 경우 수요자·공급자 기업, 생산지향형 연구소가 지식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신기술기반형은 대학과 수요자 기업, 아키텍처 혁신형은 수요자 기업과의 관계가 脫추격형 혁신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脫추격형 기술혁신의 일반적인 특성으로서, 신기술의 등장과 확산이 이루어지는 기술·경제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열리는 기회의 창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