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은 프랑스, 영국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패러 다임이 등장했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하고 프리드리히 1세 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2세는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베를린 궁정의 음악은 각 왕들의 정치관과 국가의 경제, 그리고 성장기에 경험한 심리적 영향으로 다양하게 변화 발전했다. 그중 음악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 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2세였다. 그의 통치아래 프로이센은 최강국으로 성장했고 문화가 크 게 발달하였다. 음악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정치가 안정되고, 국가 경제가 부흥해야 함을 프로이센의 음악후원의 변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음악가들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들과 달리 궁정이나 시 의회에 속한 철저한 직 업 음악가들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18세기의 음악후원은 19세기 음악후원의 형태나 개념과 는 달랐다. 19세기 음악후원의 모습도 다양한 형태지만, 기본적으로 예술가를 지원함으로서 ‘예술작품’이 창작되는 것을 후원하는 양상을 띠었다. 하지만 18세기의 음악 후원의 모습은 왕이나 영주가 문화 활동을 즐기기 위해 직업 음악가나 예술가들을 궁정에 고용하는 형태였 다. 그 과정에서 음악 행위가 이루어지고 작품이 창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18세기 남부 독 일 궁정의 음악들은 매우 실용적이면서 기능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다. 궁정의 음악후원도 지 금 사용하는 후원의 개념보다는 고용에 대한 ‘보수’ ‘연봉’ 그리고 ‘보너스’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하임 궁정과 같이 정치, 경제적인 안정 속에서 영주가 문화 예술을 사랑하고 그 가치를 인식하면 음악 문화가 크게 번성하고 음악사에 뚜렷이 기록되었다. 반면에 주변 정치적 상황 이 불안정하고 국내 경제가 불안할 때는 문화 예술이 쇠퇴하는 경우를 슈투트가르트와 뮌헨 궁정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18세기의 궁정의 문화와 음악에 대한 후원의 개념은 현대의 기업들이 예술분야와 공익사 업을 지원하는 메세나 개념이 아니라 원래 로마시대 문화예술을 지원하던 로마제국의 정치 가 마에케나스의 정책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 의미에서 예술분야를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영주가 자신의 궁정에서 음악을 즐기고 활용하기 위해 예술가 들을 고용하는 의미이다. 예술가와 음악가들의 고용이 안정되고 지원이 확대될수록 보다 뛰 어나고 가치 있는 예술 창작이 이루어짐을 18세기 남부 독일의 궁정음악을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