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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한국에서 복음주의는 보수주의와 단순하게 동일시되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의 민주화운동과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의 반동적 행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유형의 복음주의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보수적 복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서, 나는 그것을 ‘진보적 복음주의’라고 칭한다. 이 새로운 유형의 복음주의는 몇 가지 중요한 기관과 조직들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기독교학문연구회(기학연, 1984), 한국헨리조지협회(1984), 기독교문화연구회(기문연, 1986),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1987),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1989)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1990년대 이후, 이것은 다양한 조직, 기관, 운동으로 더욱 확대·발전되었다. 예를 들어, 잡지 「복음과 상황」(1991), 기독법률가회(1999), 교회개혁실천연대(2002), 성서한국(2002), 기독연구원 느헤미야(2010) 등이 연속적으로 출현했으며, 한국헨리조지협회는 1996년에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0년에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희년운동)과 통합하여 ‘희년함께’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 비슷한 운동을 개척하거나 주도했던 학자들이 IVP를 포함한 여러 복음주의 출판사들을 통해, 국내에 꾸준히 소개되었다. 존 스토트, 크리스토퍼 라이트, 로날드 사이더, 리차드 마우, 짐 월리스, 토니 캠폴로, 브라이언 맥클라렌, 존 하워드 요더가 그런 흐름의 대표주자들이었다. 이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우리는 이 운동의 신학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신학적 원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 신학,” 로잔언약(1974), 기독교세계관운동, 해방신학, 민중신학,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 좌파가 한국에서 진보적 복음주의의 탄생과 성장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진보적 복음주의는 주요 쟁점들에 대해 비교적 진보적·개방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면,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성경관은 근본주의자들의 것보다 진보적이며,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선 좌파적 경향을 보이고, 행동 방식은 명백히 엘리트주의적 혹은 학문적이다. 이처럼, 진보적 복음주의는 한국의 복음주의 역사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 혹은 극대화하기 위해선, 특히, 대중을 포용하기 위해선, 자신의 엘리트주의와 학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해 있는 독특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환경에 근거하여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서구신학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2.
        200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is article, we examine the evangelical movement during the 12th and 13th centuries. In the Middle Age, during these centuries, the evangelical movement, which tried to obey the teachings of the Gospel, saw its most powerful expression. Among various forms of evangelical movements from peoples of diverse classes, we focus on two kinds of people: Waldensians, “heretics” of the medieval church, who separated themselves from the church by criticizing and resisting the institutional church, and the mendicant friars, who aimed at returning to the apostolic tradition within the church. All these evangelical movements show that they placed an evangelical value to poverty. In other words, for those who wanted to live according to the teachings of the gospel, poverty was the first practice and the effective symbol of evangelical awakening. Thomas Aquinas, representative theologian who showed theological reflection on this evangelical poverty, says that the voluntary poverty is the first basis on the way to the perfection of Christian life. This is because the perfection of human life is the union with God, which is the ultimate goal of the humanity and because the love of wealth decreases the love of God. We find that the medieval evangelical movement challenges the evangelicals today, especially those in the Korean church. The essence of the evangelical spirit shown through the evangelical movement is the unlimited obedience to the words and the acceptance of the voluntary poverty as the condition of apostolic life. This can be summarized as discipleship(sequela Christi). We believe that we can take significant lessons and insights from the emphasis on the discipleship which is a characteristic of the medieval evangelicalism. We think so in view of the context of the Korean church, where she emphasizes on sola gratia but where the sequela Christi can hardly be found. If anyone truly believes in the forgiveness of sins through the redemption of Christ and the gospel that means the eternal grace of salvation, he or she cannot but follow Christ; the Gospel can’t be separated from the disciple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