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현재 북촌에 남아 있는 서울 觀象監觀天臺로 알려진 小簡儀臺 를 통해 觀象監에 대한 기록 및 현장 조사를 실시하여, 풍수적 입지의 특성 을 고찰하고 해석하여 시사점을 찾는 것에 있다. 관상감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天文⋅地理⋅曆數⋅測候⋅刻漏등의 업무를 맡아, 고려 말부 터 한양 천도에 큰 영향을 끼쳤던 관청이다. 한양은 풍수적 입지에 의해서 선택된 곳으로서 관상감은 지리를 보던 相地官들의 업무를 위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에 밝았던 상지관들의 평생의 업무지였던 관상감 입지는 어떤 특성과 풍수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하여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 다. 관상감은 총 네 곳으로 조선전기의 광화방 관상감은 龍脈과 穴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었으며, 경복궁 내의 관상감은 용맥이나 혈과는 무관하나, 궐 내에 자리해 궁궐이 가진 이점을 가졌다. 조선 후기 경희궁 개양문 밖 관상 감은 불완전한 용맥과 혈자리로 판단되었다. 마지막으로 영추문 밖 관상감 은 내관상감과 매우 가까운 곳이므로 일부의 풍수적 입지를 만족하고 있다. 이는 네 곳 모두 풍수적으로는 명당의 일부 조건만을 만족하는 것으로 풍수적 요건을 최우선시 한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모든 관상감이 만족 하는 공통점은 궁궐과 종각과의 일정 거리였다. 이는 관상감에서 업무보고 가 편리한 위치를 가장 중요시하였음을 알 수 있는 점이다. 이것은 관청터 의 입지 선택에 있어 풍수요소보다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위치의 중 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주제어: 관상감, 서운관, 간의대, 관천대, 풍수, 북촌, 입지.
조선(朝鮮)시대 관상감(觀象監)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曆數), 점산(占算), 측후(測候)등의 업무를 관장했던 왕립기관이었다. 그 왕립기관은 학문에 따라 천문학(天文學), 지리학(地理學), 그리고 명과학(命課學) 세 개의 부서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중 천문학 부서는 오늘날 지구과학의 학문 분야들과도 일맥상통하는 업무들을 수행했었다. 본 논문에서는 천문학 부서를 중심으로 관상감의 직제와 시험제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관상감은 조선시대 왕립기관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직제, 기능, 그리고 과거시험(科擧試驗)에 관한 규정들은 그 시대에 발간된 법전들에 법으로 명시되어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법전들, 관서지들, 그리고 실록(實錄)의 기록들에 대한 연구로부터, 먼저 우리는 관상감은 인원수의 규모면에서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 보다 더 큰 규모임을 알았다. 왜냐하면 관상감 인원의 추정에 대한 선행 연구들에 있어서는 서리(胥吏), 관노비, 장인(匠人)등과 같은 하급계층들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관상감 관원이 되기 위한 과거시험에 사용된 천문학 교재에 대한 연구도 수행하였다. 내용에 있어서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과거시험에 사용된 천문학 교재들에 대한 체계적인 첫 번째 연구이다. 마지막으로, 관상감을 포함한 당시 예전(禮典)에 속했던 기관들의 과거시험에 적용되었던 몇 가지 시험 규정들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