蒼崖 許萬璞(1866~1917)은 진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말의 유학자 이다. 武科에 급제하여 잠시 武人으로 살았으나, 외세의 침략과 문란한 정치 현실에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관복을 벗어던지고 고향인 진주 지 수 승산마을로 낙향하였다. 그리고 세상을 마칠 때까지 은둔하다시피 하면서 經史를 탐구하고 스승을 찾아다니며 도학을 강론하였다. 본고 는 그 동안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진주 지역의 한말 유학자 창애 허만박을 주목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허만박의 문집을 토대로 그의 삶을 보다 세밀하게 추적해보고 그 자취를 담고 있는 한시를 검토 분석 하여 그의 내면의식을 따라가 보고자 했다. 52세의 나이로 비교적 짧은 생을 살다간 허만박은 선조들의 행적이 그러하듯 젊어서부터 은거 지 향적 면모를 보이다가 무과 급제 후 관직에 진출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 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고 겪은 외세의 침략과 국가적 위기에 그는 절망 하고 스스로 사직하였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승산 마을의 염창강 가에 은둔하면서 도학의 근본 탐구에 골몰하며 절의를 실천하고자 하 였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로 인해 스승 송병선을 잃은 허만박은 이후 송병순과 최익현, 전우를 차례로 스승으로 모시며 도학을 강론하 고 자제와 후진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 시절 그는 상소문과 편지 또는 제문에서 혼란하고 무력한 정치 현실과 일본의 침략에 대해 비분강개 하며 통탄과 憂國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거듭되는 집안의 불행으로 위축된 모습과 하루하루 견디는 심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삶의 이력으로 볼 때 그는 폭넓은 교유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려웠 던 것으로 보인다. 허만박은 자신이 살았던 智水 勝山 마을의 山水를 대상으로 삼아 시를 많이 지었다. 더불어 인근 주변 지역의 승경이나 또는 자연 속의 구체적인 사물들에 대해서도 시적 감수성을 발휘해 시를 짓는 계기로 삼았다. 물론 한시에 묘사된 산수 자연은 허만박의 삶의 흐름과 그에 따른 정서가 스며들면서 시기에 따라 다른 느낌과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허만박은 자신의 삶 대부분을 아름다운 고향의 산수에서 은둔하 며 조용하게 보냈지만, 당시 나라의 형세가 혼란하고 위급했던 만큼 그에 대한 심정과 감성도 시의 소재나 때에 따라 드러내기도 하였다. 1910년을 전후해 지은 시에서는 나라 잃은 분노와 비통함의 시적 정서 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으며, 더불어 체념과 자조적 한탄도 뒤섞여 표출 되었다. 또 현실과 차단한 채 은거의 즐거움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의식도 담아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