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

        1.
        2025.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시대 산성의 축성법은 군사적 상황과 외부 충격, 그리고 외래 성제의 수용과 변용 에 따라 변화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고려 말 대몽항쟁기의 경험을 계승하여 전국적으로 대규모 입보용 산성을 수축하였으나, 1429년(세종 11) 이후 읍성 중심의 방어체계로 전 환되면서 산성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조선은 다시 산성 중심의 방어체계로 전환하였다. 명나라의 『기 효신서』가 전래되어 포루, 여장, 현안 등 새로운 축성 개념이 도입되었으나, 전시 상황의 제약으로 제한적 적용에 머물렀다. 조선 후기에는 병자호란에서의 홍이포 충격을 계기 로 성벽의 대형화·입방체화가 이루어졌으며, 포혈·돈대·총안의 표준화, 읍치의 산성 내 조성 등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축성법의 변화에는 중국 성제의 규식화와 일본 왜성의 곡륜형 옹성·완경사 성 벽·다중 성벽 구조가 영향을 주었으나, 조선은 이를 전통 기술과 융합하여 독자적 양식 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조선 산성은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위기 대응과 외래 성제의 창의적 변용을 보여주는 복합적 군사 건축유산으로 평가된다.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