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재일동포 역사 교과서와 강좌제 민족대학(民族大学) 교재의 내용분석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 강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 펴보는 데 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재일동포 강좌제(在日 同胞講座制) 민족대학 교재는 1990년대 초반 일본 출생 재일동포 3세들 이 재일동포 사회에 증가하면서 민족에 대한 기초지식과 모국에 대한 이 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재일동포가 차세대와 일본인과 의 소통의 폭을 확대하고자 제작되었다. 둘째, 재일동포 역사 교과서는 2000년대 초반 재일동포 1세의 급격한 감소로 재일1세의 역사를 재일3 세~4세에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주요 내용은 해방 전후 재일동포 의 이주-정착 생활-차별철폐 운동-헤이트스피치-다문화 공생 등으로 재 일동포의 전반적인 활약상이나 모국 공헌 등으로 구성되었다. 결론적으 로 연구 결과, 재일동포 교과서와 교재는 재일동포 사회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재일동포 청년 세대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세대 변화에 대한 자각 을 심어 주고 오늘날까지 많은 일본학교와 민족학교에서 부교재로 활용 하거나 한국에 대한 민족적 지식 습득과 ‘재일동포 역사’ 강의 교재로 활 용하면서 그들의 정체성 함양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연구는 한일 간 경제 문화적 관계가 정치적 관계를 극복하고 한류와 혐한 류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 대해 BTS 활동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데 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혐한류의 원조 는 전후 일본의 재일조선인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선인에 대해 식민지 시 대부터 취해온 일본인의 인식으로 볼 수 있다. 둘째, 한국의 문화정책은 1987 년 민주화 선언 이후 1998년 대중문화개방정책으로 이어졌으며 대일관계 개선 수단과 외교적 위기에서 민단 단체나 자치단체의 교류 증가 등의 긍정적인 측 면을 가져왔다. 셋째, 일본에서 BTS 현상은 한류 문화의 획기적인 확대로 정치 적 관계와 무관하게 민간단체나 자치단체의 가교역할을 초월하여 일본인 수용 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와 문화적 교류의 확대를 가져왔다 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넷째, 일본에서 한류와 혐한류의 현상은 극단적으로 상 호 대립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두 흐름은 상호 유사성과 함께 동시에 진행 되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BTS 현상은 이러한 흐름을 초월하였다 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한류와 혐한류의 동 시적 존재 현상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 공교육의 활용과 매스컴의 홍보, 시민사회의 수용과 교양강좌 등을 통한 지속적인 개선과 실천 노력이 필 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는 1959년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한송환(북송) 발표 직후인 2월 부터 6월까지 한일 양국의 국회에서는 재일조선인 북송에 대해 어떻게 논의를 전개하였는지 분석하였다. 즉, 본 연구의 질문은 ‘1959년 초반 한국 국회와 일본 국회는 재일조선인 북송 문제에 대해 어떠한 논의를 했는가?’이다. 이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는 한국 국회와 일본 국회의 1959년 회의록을 분석했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의 국회는 북한을 주권국가가 아니라고 보며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 계획에 반대 하는 논의를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회 내의 의견 차이로 한 국 국회가 재일조선인 북송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논의 를 진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반면 일본의 국회는 한국 정부와의 관계 악 화를 우려해 재일조선인 북송 문제를 한일회담과 구분하여 처리하는 방 안을 논의했다. 또한, 일본 국회는 일본 정부가 북송 문제에 직접 관여하 지 않도록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재일조선인 북송 문제를 주도하여 해결해 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며, 동시에 북송 실행을 위해 북한적십자사와의 회담에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논의를 확장하였다. 그러므로 재일조선인 북송 문제에 대한 1959년 2월부터 6월까지의 한국과 일본의 양국 국회 의 논의를 비교하면, 일본 국회의 논의가 한국의 국회 논의보다 구체적 이고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후 1959년 12월 재일조선인 의 북송은 결국 실행되었다.
본 논문은 냉전기 1959년부터 재일조선인 북한송환 후의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비정부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어 NGO ‘모두 모이자’의 설립자인 가와사키 대표의 활동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모두 모이자’ 설립 후 2015년부터 현재까지의 가와사키 대표의 활동을 신문 기사 등의 1차 자 료를 통해 냉전기 재일조선인 북한송환 이후의 인권 문제에 대한 구체적 인 분석을 하여 기존연구의 공백을 보완하였다. 본 논문은 다음의 두 가 지 점을 제시한다. 첫째, 1959년에 시작되었던 재일조선인 북송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며, 여전히 우리가 계속 풀어야만 하는 역사적 문제이다. 둘째,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이후 관련자들의 인권 증진을 위하여 ‘모두 모이자’는 국가 행위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큰 활약을 했으며 계속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모두 모이자’의 가와사키 대표 의 재일조선인 북한송환 피해자들의 인권 증진을 위한 여러 활동은 한국 과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재일조선인 북한송환의 피해를 알리는 계 기가 되었다.
This study examines the historical trajectory of and the impetus for the selection of bulgogi by the Koreans residing in Japan, contextualized in Japanese history as well as vis-à-vis theories of cultural anthropology and the practice thereof. Moreover, it focuses on the cultural-economic and diachronic processes of bulgogi’s development into a veritable ethno-national food industry amidst the influence of Japanese society upon Korean-Japanese dietary habits. Finally, the study addresses the place of Korean culinary traditions, including bulgogi, in education that may impart a sense of Korean ethno-nationalist consciousness in the third-, fourth-, and fifth-generation Korean- Japanese in various social spaces within Japanese society. This is so done in face of lived experiences in the attempts to solve the problem of heritance of ethno-nationalist consciousness for the Korean-Japanese people. In sum, three suggestions are forwarded: 1) In the future, it will be necessary to produce talented individuals who can cultivate ethno-nationalism through a systematic study of the culinary traditions of Korea. In addition, possibilities for extending to other grade levels the courses that are currently executed at the middle-school first-grade level must be explored; 2) Through regularly held re-education that includes research and seminars by and for the Korean-Japanese people in the food industry in not only Japan, but also in South Korea, possibilities toward a more creative, progressive culinary culture for Korean food, including bulgogi made of wagyu, Korean beef, as well as other types of beef, should be sought from the persepective of nutrional science and management systems; and 3) In sharing common goals of the disparate groups in the Korean diaspora, including the Korean-Chinese people in Yanbian, possibilities for collaborative research should be explored, and the problem of cultivating ethno-nationalist consciousness on foreign soil must be discu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