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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울산 무거동 옥현유적의 자료를 중심으로 옥현유적의 취락구조와 출토유물양상을 검토하여 주거지의 규모나 배치양상에 따라 주거군집을 설정하고, 출토유물양상에 따른 각 주거군집의 특징을 파악 하여 당시의 생업경제활동이 취락 내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옥현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는 독립 구릉의 능선부에 형성된 4개의 정상부와 그 사이 소곡부를 기준으 로 4개의 주거군집으로 나누었다. Ⅰ·Ⅱ군은 주거지 2~3기가 소군집을 이루고, Ⅲ·Ⅳ군은 대형주거지 3 기와 다수의 중형, 소형주거지들이 소군집을 이루고 있다. Ⅰ·Ⅱ군은 Ⅲ·Ⅳ군에 비해 공지가 많아 취락 전체의 집회나 회의 등의 장소인 광장의 기능이 보다 더 강조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Ⅲ군은 주거지의 밀 집도가 높고 농경구를 비롯하여 모든 생업경제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어 논 경작을 중심으로 생업경 제활동을 주도한 주거군으로 파악된다. 옥현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논은 논경작에 유리한 입지선정 과 논둑과 수구, 수로 등 물을 이용하는 시스템을 통해 당시의 농경기술의 체계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울산지역 취락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옥현유적과 비교하면 한 구릉내에서 정형화된 구조의 주거지가 축조되고, 일정한 배치양상을 가지고 주거지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양상이 공통적으로 확인된 다. 대부분의 취락이 주거중심의 생활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생업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울산지역에서 옥현, 입암리유적을 제외하면 비교적 큰 규모의 경작유구(논)가 확인된 예가 없고, 출토유물 중 농경구보 다 수렵구, 어로구의 비중이 더 높다는 점에서 청동기시대 전기의 수렵과 어로를 통한 생업경제활동이 울 산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중기에도 활발하게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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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의 구조와 변화과정을 통해 당시 취락사회의 성장과 그 배경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전기의 이른 단계에 소규모 취락단위로 이주해온 집단은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치 않는 화전과 같은 농경방식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안정적으로 취락을 유지하고 자원예측성을 높이기 위해서 농경에 대한 의존도가 강화되고, 그에 따라 취락의 규모가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산만지역의 전기 유적에서 확인되는 탄화미 등의 자료로 보아, 당시에 벼재배는일반적 현상으로 생각된다. 천안 백석동 취락의 규모와 구조로 볼 때 수전의 경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보았다. 당시의 소규모 취락의 경우, 주변의 취락사회와의 관련 없이 단독으로 영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며,주변의 취락사회와의 상호관련성을 유지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을것이다. 또한 취락사회의 안정을 얻고 생태적·사회적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개별 취락조직의 확대를꾀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형성된 대형취락들은, 일정한 공간적 거리를 두고 분포하는데,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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