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켈트족의 여명』에 사용된 이중서사기법이 에세이와 스토리, 두 장르를 결합하는 한편 시인의 반자아의 마스크로서 기능하는 점을 살펴보는 것이다. 『켈트족의 여명』은 아일랜드의 민담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편집하고자 한 예이츠의 독특하고도 창의적인 시도이다.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켈트족의 여명』은 보편적인 상상력과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것의 내러티브는, 예이츠가 전통 및 동시대의 작가들로부터 배워온 고도로 정교한 마스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 상실한 존재의 통합을 복원하는 것이 예이츠의 담대한 목적이었는데 비록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실패할 운명이라 해도 그는 결코 초월적 비전과 이를 향한 수단으로서 예술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통합을 상실한 시대의 반자아를 대변하는 서사적 마스크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듯 시인의 상상력과 믿음 그리고 꿈 또한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예술만이 희망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켈트의 여명』 속에는 통합의 사상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저변에 깔려 있다. 그것은 주로 황혼의 이미지, 범신론, 대기억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특히 황혼의 이미지는 통합에 대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물질적인 영역과 정신적 영역의 통합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범신론과 대기억 역시 일원론적인 관점에서 통합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예이츠의 대표적인 사상인 존재통합의 사상이 뿌리 깊게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캘트족의 황혼』의 일차적인 기획 목적은 현대의 산업적이고 물질적인 영국의 정신에 대항하여 아일랜드의 정신을 세우는 것이며 아일랜드 소작 농민의 민 담과 전통에 부합하여 올곧은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부활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아일랜드를 나누고 있는 이질적인 가톨릭 계층과 프로테스탄트 계층을 문화적으로 통 합하려 한다. 그러나 예이츠가 통합을 시도할수록 종교, 계층, 종족, 언어와 같은 문제 들은 이야기 속에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재등장한다. 민족이라는 보다 매력적인 외관의 이면에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예이츠의 민담수집에 소극적인 소작 농민들의 태도, 예이츠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을 꺼리는 소작 농민의 태도, 게일어를 모르는 예 이츠의 한계, 소작 농민과 거리를 두려는 시인의 태도 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캘트족의 황혼』은 민족과 문화의 통합을 이루려는 예이츠의 노력과 이를 방해하는 아일랜드의 종교, 계층, 언어가 서로 갈등하는 공간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After the publication of his book, The Wanderings of Oisin and the Other Poems in 1899 Yeats was keenly interested in the non-English cultures of the British Isles. It was known as the Celtic Twilight. In 1898 he published a volume of essays called “The Celtic Twilight” containing a number of folk stories. In 1891 he founded the Irish Literary Society and worked on a three-volume edition of the poetry of Blake, which was published in 1893. Because of this involvement he pursued the study of symbolism, which is so important for his poetry. The evidence of this is to be found in his two volumes of the decade, The Rose(1893) and The Wind Among the Reeds(1899), with their many uses of the rose and other symbols. Lady Gregory encouraged Yeats’s interest in folk-lores, visiting with him the homes of her tenants and listening to their stories. She also encouraged him to work for the theatre, which led him to the founding of the Irish National Theatre Society in 1902. In this way Yeats attempted to solve the two problems that were central to him as a public poet: the general problem of symbols in literature in an age lacking a common tradition and the particular problems presented by the confusions of the Irish situation. He was impelled to find a way of putting Ireland into some mental order, so that cultural symbols of dependable significance would be at the disposal of the artist. In this context I read the two poems, “To the Rose Upon the Rood of Time” and “The Song of Wandering Aengus” as the manifestations of the Celtic, symbolic tradition of the Irish elite and the tradition of the Irish people respectively. But in the 1890s and the early 1900s, for all his identification with the Gaelic ethos, a wistful hope remained for leadership from a regenerated landlord class. The Ireland that Yeats envisaged was a nation with a distinctive cultural and spiritual identity, and he imagined a community free of sectarian differences and conflicts. That vision was not as revolutionary as some critics have supposed, and it hardly outlasted the 1890s. A century later, however, we find an unusual amount of interest in his early wri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