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요서(遼西)지역에서 교장과 무덤을 중심으로 출토되는 상주(商周)시기 중원계 청동용기의 기원과 유입경로, 주체인 작기자(作器者) 혹은 소유자 등에 대한 학계의 오랜 숙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연산산맥 남북지역에서 중원계 청동기가 출토되는 유적을 시기별·지역별로 구분한 후 주변지역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요서지역 출토 청동용기의 주체를 추정하고, 이의 북상에 따른 연산산맥을 중심으로 한 중국 북방지역 청동문화의 변화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대상은 시기적으로 서주 연(燕)이 분봉되기 이전 즉 기원전 13세기에서 11세기로 한정하고, 연산 산맥 남북지역에서 상계(商系) 청동용기가 출토된 유적을 중심으로 하였다. 본고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째, 요서지역은 모두 본고의 전기에 해당하며, 노로아호산 이서지역에서 출토된 상계 청동용기 는 전형적인 중원계에 속하는 기물과 중원 이외의 지역 혹은 비주원계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판단되는 기물이 공존하며, 주개구문화 후기 혹은 이가애문화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노로아호산 이동지역 출토 청동용기는 전형적인 중원계에 속한다. 그러나 상문화의 직접적인 유입이라기 보다는 일시적인 교류나 정착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둘 째, 연산 이남지역에서 출토되는 상계 청동기 중 본고의 전기에 해당하는 평곡 유가하유적과 일부 천안 후천의유적의 무덤은 상인의 직접적으로 유입에 의한 것으로, 후기에 해당하는 후천의 동기 묘와 장가원 무덤은 상대 선주(先周)문화의 유입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셋 째, 청동원료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서 연산산맥 일대의 풍부한 광산자원은 상주시기 핵심지역의 주요 경락 대상이었을 것이다. 본고의 전기에는 희작구유형이, 후기에는 연산 이남의 후천의유적과 장가원유적이 대표적이며, 서주 건립을 전후하여 토착문화는 소멸·흡수되거나 연산산맥을 넘어 요령지역으로 이동해간 것으로 추정하였다.
On the early stage of Emperor Qianlong period, Qianlong ordered the
ministers to sort out interior cultural relics. Therefore ministers successively
compiled four antiques catalogue, they are "Midian Zhulin
Buddhism and Taoism paintings appreciation", "Shiqu Baoji paintings appreciation",
"Ancient bronze vessels collection appreciation in Qing Dynasty"
and "Tianlu Linlang official books collection catalogue appreciation"
respectively. The stylistic rules and layout of the first two was borrowed
from Gao Shiqi "Jiang Cun Xiao Xia Lu". The stylistic rules and layout of
the record of "Ancient bronze vessels collection appreciation in Qing
Dynasty" was borrowed from Wang Fu "Bo Gu Picture" and Lv Dalin
"The Archaeological Picture". To a great extent, the stylistic rules and layout
of "Tianlu Linlang official books collection catalogue appreciation" was
inherited from the connoisseur ideology of "Shiqu Baoji paintings appreciation"
and "Ancient bronze vessels collection appreciation in Qing Dynasty",
which was the evolutionary adaptation of style reference and actual situation
of books identification and collection. As the classic examples of official
connoisseur catalogue, "Tianlu Linlang official books collection catalogue
appreciation" had a significant impact on Qing dynasty bibliography.
As the development of textology in Qing Dynasty, the connoisseur gradually
flourished in society. Under its inspiration and influence, the edition
bibliography of Qing dynasty continued to develop.
경형동기는 정면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직경 5cm 이상의 평면 원형의 뉴가 달려 있는 청동기이 다. 주연부의 꺽임 여부를 제1기준, 뉴 위치를 제2기준, 크기를 제3기준으로 할 때 전체 8개 형식으로 분류된다. 대체로 기원전 10~9세기에는 A형계와 B형계가 모두 확인되는 반면, 이후부터는 뒷 시기로 갈수록 A형계만이 지속되는 가운데 뉴가 중심뉴에서 중연뉴를 거쳐 변연뉴로 이동되는 양상을 보인 다. B형계는 기원전 10~8세기 하가점상층문화에만, AIb식·AIc식은 기원전 6~5세기 심양시에만, AIIa 식은 기원전 5~4세기 중엽 길림시에만, AIIIa식은 기원전 3세기 전엽 함평군 일대에만 분포한다. 하가점상층문화의 경형동기는 주로 요대와 관련 부속물에 착장되어 수장층의 의례 활동 관련의 의기 이자 보조적인 위세품으로만 사용된 반면, 정가와자유형에서는 수장층이 살아 생전에 사용한 의기 외 에 수장의 죽음을 영송하는 장례 관련 특수 기물과 위세품적 고급 거마장식류로도 사용되어졌으며, 서 단산문화 후기단계에서는 주로 목에 걸고 사용하는 의기로 사용되어졌고, 강상문화 누상단계에서는 주 로 위세품으로 사용되어졌고, 한반도 영산강 유역의 함평군 상곡리집단에서는 수장이 의례를 진행할 때 여러 매를 그물 구조의 끈에 연결하여 이를 목에 걸어 착용하던 의기로 사용되어졌다.
한반도의 점토대토기문화는 점토대토기와 파수부호, 청동기·철기, 유구석부 등의 유물조합에 의해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1단계는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로 중국 동북지방 凉泉文化와 춘추시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기원전 5세기대로 볼 수 있다. 한국식동검이 등장하는 3단계는 기원전 4세기대로, 전국계철기와 삼각형점토대토기가 등장하는 4단계는 기원전2세기대가 중심이다. 또 와질토기와 다량의 철기가 보이는 5단계는 기원전 1세기대가 중심이 된다. 한편 점토대토기와 함께 한반도에 전개되는 초기철기문화의 사회문화적 변동은 점토대토기문화가 기존 청동기문화의 연속이라기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임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송국리유형까지만을 청동기시대로 보아 청동기시대는 조기(미사리유형)-전기(가락동,역삼동유형)-후기(송국리유형)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고에서 설정한 점토대토기문화 중 1,2단계는 송국리유형과 같은 시기로 볼 수 있으며, 5단계는 원삼국문화와 중첩된다. 따라서 초기철기시대는 앞서 살펴본 5단계 중 3단계와 4단계만을 지칭할 수 있으며 철대연대로는 기원전 4~2세기의 약 300년의 기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