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ts and Keats differently introduced their notions of time circulation and eternal life. One expressed limitations of human which could be overcome by art. And the other introduced time flowing in harmony and peace. And in one poem, we can see something lively such as young people, birds, trees, salmon-falls, and in the other poem we can find laziness and leisure. However, there is some similarity in that they introduce the subjects of circulation of life and eternal life.
Yeats shows the passage of time by the Great Wheel or gyre which develops in the course of formation, fullness, decline. And Keats also presents the passage of time by using the phrases such as “swell the gourd,” “plum the hazel shell,” “warm day will never cease.” These symbolize swelling and continuance of time.
So we can find the way how time is flowing in their poems. In Yeats's “Sailing to Byzantium,” time travels from a youth to an old age, and in “To Autumn,” time travels from summer to autumn.
In this circulation Yeats's immortality can be reached by the media of art. And Keats gets it by the circulation of seasons. So one continues to voyage with eagerness for Byzantium in which he could find his everlasting life through the mosaic of 15th century, and the other comfortably waits for next seasons. Two poets respectively develop their poems in different ways, but they finally achieve the same subjects of ever-lasting life in the passage of time.
In conclusion, Yeats pursued immortality by separating spirit from the body, because the flesh would be decayed. On the other hand, Keats thought that the immortality could be acquired by being one with time. Unlike Yeats's “Sailing to Byzantium”, Keats's “To Autumn” has a tendency to keep harmony and reconciliation, instead of confrontation. Therefore, autumn enjoys “sitting,” and “asleep” without haste.
본 논문은 T. S. 엘리엇의 「텅 빈 사람들」에 나타난 “허공” 의미가 엘리엇이 주장하는 “전통”의 의미와 어떻게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모더니즘 측면에서 스티븐스의 「눈사람」에 나타난 “무”의 의미와 연결시켜 보고자한다. 두 시인이 말하고자했던 “무”가 단 순히 비어있음이 아니고 실재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이거나 또는 제한된 인간의 시각으로는 규정지울 수 없는 범위를 표현하는 방식임을 증명하 고자한다. 엘리엇은「텅 빈 사람들」에서 “텅 빈 것”과 “채워짐”의 관계를 근접관계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단순한 “허공”의 의미를 어떻게 극복 하는 지를 보여주고 스티븐스는 「눈사람」에서 잠재성이 있는 무와 존재 하지 않는 무로 구분하여 실재에 다가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두 시인의 목소리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처럼 보이나 결과적으로 두 편의 시에서 독자는 같은 것을 고민하는 두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즈의 귀향》은 《포페아의 대관식》의 그늘에 가려져 왔 다. 상대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작품으로 인식되었던 《율리시즈의 귀향》의 주제는 두 주인공 율리시즈와 페넬로페의 사랑의 승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당시 전 유럽에서 유행했고 《율리시즈의 귀향》의 대본가 바도아로가 속해 있던 익명학회도 애용했던 무의 관념에 의 거하여 이 오페라를 해석하면 전혀 다른 일면을 보게 된다. 《율리시즈의 귀향》에서 언급하 는 사랑은 두 주인공의 그것이 아니며 반대 축 인물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무로서의 사랑이 다. 또한 대본과 총보의 차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 대본가와 작곡가의 의견 차이의 원인 역 시 무의 관념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 《율리시즈의 귀향》에 대한 이러한 시각의 해석은 그 동안 《포페아의 대관식》에 비해 《율리시즈의 귀향》을 파악하기 쉬운 작품으로 받아들였 던 기존의 해석을 뒤집고 더 나아가 《포페아의 대관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단서 또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