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문화정치의 시대였다. 군사정부는 문화정책을 통해, 민간에서는 문화운동을 통해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치열하게 대립했다. 문화는 정신을 지배하는 근간이 된다. 제5공화국 군사정부와 민중문화운동 모두 전통민족문화를 통한 역사의 주체성 확립과 민족적 자긍심을 정립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가졌다. 그러 나 군사정권이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둔 사대부 전통문화를 통해 국가주의를 확립하고자 했다면, 민중문화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규정하며 민중중심주의를 실현 하고자 했다. 이렇듯 양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달랐다. 1980년대는 민중문화운동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민중문화는 문화 안에 속하는 소범위이지만 1980년대는 군사정권이라는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민중문화운동이 문화운동보다 우위에 있는 특수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민중문화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고 궁극적으로 군사정권의 타도를 목표로 한 문화투쟁, 문화정치였다. 민중문화운동은 사회학, 미학, 철학, 종교 등의 인문학이 중심이 되어 이념을 계발했고, 시위나 집회에서의 현장실천에 있어서는 예술분야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이 되었고, 실천적 방안에는 전통연행예술 이 대표성을 가졌다. 또한 민중미술, 포스터, 판화 등의 시각예술분야의 활동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 열망이 전 국민적 지지를 받고 시위가 대규모로 펼쳐지면서 예술분야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따라서 민중문화운동 용어도 민중문 화예술운동, 민중문예운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민중문화운동의 확산에 있어 대학생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민중문화운동에 참여한 반체제 지식인들은 친북적 성향으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학생들의 활동은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적 공감을 샀다. 반체제적인 운동은 대학가의 문화로 자리 잡아 사회주의 이념을 공부하는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특히 연극반, 탈춤반, 농악반 등 전통연행예술 동아리는 이 같은 대학문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특히 매년 대학축제로 열리는 대동제는 군사정부에 대한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다. 대학대동제는 역사 속에서 민중혁명으로 무참히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현실에서의 민주화 실현에 대한 결연한 의지, 현실 치유의 희망을 증폭시켰다. 민중의 희생을 환기하는 목적은 민중중심의 세상을 건설 해야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공고하게하기 위함이다. 민중문화운동은 문화예술이 경제와 정치 분야의 투쟁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사회의 이념적 방향을 바꾸게 하는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군사정권은 종식되었다.
이 글은 한국교회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선교적 교회에 대해 북미 교회 위기의 상황에서 복음과 문화와 교회 사이의 삼자 대화를 통해 신학적으로 깊이 있게 제기된 문제와 대안을 배우고,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민중교회를 살핌으로써 양쪽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상호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교회 뿐 아니라 북미 교회에서도 선교적 교회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이기 때문이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고, 목회자들이 결국은 교회중심적 선교관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선교적 교회론이 태동된 배경과 신학적 전제와 정의, 신학적 회심과 신학적 방향을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선교적 교회가 지역교회를 강조하기 때문에 선교적 지역교회에서 신학함을 다루고, 지역교회로서의 선교활동이 갖고 있는 내용이 앞에서 언급했던 신학적 방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선교적 공동체를 육성하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또 선교적 리더십이 선교적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선교적 리더십의 기초와 형태를 다룬다. 그리고 선교적 교회론의 장점과 한계를 지적한다. 이런 선교적 교회론을 민중교회에 적용해 보면 우선 신학적 회심과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다. 북미교회가 복음과 문화와 교회 사이의 대화를 한다면, 민중교회는 시대적 과제와 씨름하려 했기 때문에 삼자 대화가 큰 의미를 갖기보다는 민중교회에 대한 민중의 반응이 초래한 민중에 대한 부정적 이해가 민중교회와 목회자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이전보다 더 확대된 민중선교를 하게 됨을 본다. 그리고 민중교회에서 선교적 교회의 구성요소와 신학함, 그리고 선교활동을 살펴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교적 교회론에서 본 민중교회의 장점과 한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The twentieth-century history of the ROK (Republic of Korea) is arguably the story of a people’s long struggle for freedom from authoritarian rule. This essay will explore the struggle waged by the people between 1980 and 1987 in ROK to secure civil and political rights denied by military dictatorship. This essay will critique the organisational platform of the movement and use the Spiral Model of human rights norm socialisation (Risse et al, 1999) to understand the regime response to the advocacy movement. This will be contextualised alongside the role of the US (United States of America) as the hegemonic power in ROK in either supporting or denouncing ROK human rights violations. Central will be the role of discourse[1] in enabling the construction of counter-hegemonic resistance ‘from below,’ drawing from Gramscian concepts of a constructed public realm in which discursive forces battle with challenges to hegemony[2]. The essay will conclude by suggesting the successes of the movement, in moving ROK towards norm internalisation, were facilitated by the subversive discourses of the minjung ('people') resulting in an irresistible counter-hegemonic discourse against the Chun Doo Hwan regime.
The aim of the article is to outline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minjung church from 1983
to 2005 and to identify its new missionary tasks in a changed world. At the end of the cold
war, the minjung movement in general, the minjung mission in particular, seemed to be
unnecessary any more. After the economic crisis of 1997, however, the minjung mission played
an important role for taking care of victims of the structural adjustment programs of many
corporations, and for establishing alternative communities. Its history divides into four periods:
the formation period (1983-1987), the development period (1988-1992), the transformation period
(1993-1997), and the professional period (1998-2005). Each period deals with its socio-economic,
political, cultural background and minjung mission’s main contents,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
The history of the mission of the minjung church is interpreted by the results of the social
biographies of 26 minjung pastors. According to their social biographies, minjung pastors changed
themselves in the process of the minjung mission rather than changed the minjung. They
rediscovered the importance of the Bible and religion in relation to the social change. Also they
found negative aspects of the minjung. They regarded spirituality and life as pillars for the
forthcoming minjung mission. Some reflections on mission of the minjung church was carried out
through analy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ideology, the dilemma of
identity-involvement, positive understanding of religion, understanding of minjung, and theories of
community organization and conscientization. In a changed world, spirituality, the minjung and
life are identified as new tasks for the minjung 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