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俛宇 郭鍾錫의 性理說 -寒洲 성리설의 수용과 전파- KCI 등재

Myeonwu Gwak Jongseok's Neo Confucian View of Human Nature

면우 곽종석의 성리설 -한주 성리설의 수용과 전파-

  • 언어KOR
  • URLhttps://db.koreascholar.com/Article/Detail/31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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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연구 (The Nammyonghak Study)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원 (The Nammyong Studies Institute)
초록

면우 곽종석은 한주 이진상의 수제자로 寒洲學派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는 당시에 이단으로 배척받던 한주의 성리설을 수용하였고, 그가 한주에게 執贄의 禮로 올린 󰡔지의록󰡕은 한주 성리설의 입문서가 되어 경상우도의 신진 학자들 사이에 두루 읽혀 한주학파의 형성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면우는 󰡔지의록󰡕에 대한 한주의 답변 중에서 유독 氣質之性 한 조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여 한주와 논변하였다. 喜怒哀樂의 감정이 일어나기 전인 未發 상태에서 기질이 있느냐 없느냐, 기질의 개념이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 제를 가지고 논변을 전개한 것이다. 면우는 관점을 달리하는 논거를 두루 제시 하며 기질지성을 희노애락 미발의 상태에서의 性의 개념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 했고, 한주는 자신이 朱子의 晩年定論이라 믿는 설에만 의거하여 기질지성은 性의 개념이 아님을 강조했다. 즉 면우는 기질은 성과 함께 태어날 때부터 형성 되는 것이니, 기질에 의해 제약된 성이라 할 때 ‘기질에 의해 제약된’까지도 성 의 개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주는 성의 時分인 미발에서는 氣가 작용 하지 않고 성의 본체만 온전히 드러나므로 기질을 성의 개념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면우는 실상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주는 개념 정립을 중시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면우는 기질지성에 대한 기존 학설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 주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고증한 주자와 퇴계의 만년정설만을 논거로 삼았다. 면우는 ‘미발 상태에서 기질이 없지는 않지만 기질을 말할 필요는 없다’ 한 한 주의 결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면우가 기질지성에 관한 기존 학설의 개념들을 다 부정한 것은 아니다. 면우는 미발을 性의 상태로 규정, 기 질이란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 한주의 학설을 수용하면서 여러 관점에서 기질지 성의 실상과 개념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면우의 이러한 학문 성향이 그 후에 나오는 그의 학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추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이 문제는 스승인 한주의 학설과 대체에서 다를 수 없는 면우의 학설 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Gwak Jongseok, ho Meonwu(俛宇), is a representative scholar of Hanju school named after Yi Jinsang's ho Hanju(寒洲). He accepted Hanju's view of human nature, which was dismissed as heresy at that time. He submitted his record of inquiries called Jieuirok(贄疑錄) to the master. As it was widely circulated among young scholars in the Gyongsangwudo(慶尙右道), the book became a primer for Hanju Neo-Confucian school. Gwak accepted Yi's comments of his inquires by and large, but exceptionally raised an issue of qizhizhixing(氣質之性)-human nature attributed to individuals. They discussed whether qizhi(氣質)-vital energy and corporal matter-was involved or not in the state of weifa (未發), i.e., when various emotions did not arise. Gwak listed assorted opinions based on diverse perspectives, and claimed that qizhizhixing (氣質之性) should belong to human nature when emotions do not arise. On the while Yi stressed that it was not part of human nature based on what was believed as ZhuXi(朱熹)'s theory in later days. According to Gwak, qizhi(氣質) was formed together with human nature from the beginning thus human nature restricted by qizhi(氣質) should be also considered part of human nature. On the other hand, in Yi's view qizhi(氣質) cannot be part of human nature since qi(氣) is not activated and only human nature manifests in tact in the state of weifa(未發). In other words, Gwak lay emphasis on actual state while Yi attempted to conceptualize his theory. Gwak thought that conventional theories of qizhizhixing(氣質之性) should not be neglected meanwhile Li's argument was grounded on LiHwang(李滉) and ZhuXi(朱熹)'s theories in their later days. Later Gwak accepted Li's conclusion that qizhi(氣質) was not to be credited in the state of weifa(未發), albeit there existed qizhi(氣質). However, it does not mean that Gwak disregarded all the theories of qizhizhixing (氣質之性). He accepted Li's view that weifa(未發) is state of human nature, qizhi(氣質) excluded, and yet thought the actual state and concept of qizhizhixing(氣質之性) should be reflected. It has yet to be discussed more how Gwak's such tendency developed into his later theory. This matter is also critical for clarifying Gwak's theory that does not differ from his master Li in general.

목차
Ⅰ. 머리말
Ⅱ. 성리설의 入頭處 󰡔贄疑錄󰡕
1. 한주 李震相과의 만남
2. 성리설 입문서로서의 역할
Ⅲ. 󰡔지의록󰡕의 쟁점 : 氣質之性
Ⅳ. 맺음말
저자
  • 李相夏(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남명학연구소 특별연구원) | 이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