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chon Family Archives : Letters
경남 산청군 신등면 법물은 상산 김씨 가문의 세거지이다. 상산 김씨 가문은 이곳에 세거하면서 향촌 사족으로 성장하였으며, 관료들과 학자들을 다수 배출 하였다. 19세기 박치복, 허전, 이진상의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섭렵한 학자 인 김진호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는 법물의 이택당을 중심으로 강우지역 학자 들과 폭넓은 교유관계를 맺었으며, 물천서당 등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후학 양 성에도 힘썼다. 19세기 김진호가 학문 활동을 하던 시기의 고문서 1,709건이 김진호의 후손 댁에 소장되어 있다. 1,709건의 고문서는 간찰․만사․시문․제문․혼서․잡저․기문․서 문․발문․단자․상량문․행적기․고유문 등이다. 이들 1,709건의 고문서 가운데 약 64.2%에 달하는 1,097건이 간찰이다. 1,097건 간찰은 상당 부분 김진호에게 발신된 것이며, 또 성재집의 간행처로 사용되던 은낙재나 강학의 장소인 이 택당에 기거하던 학자들에게 발신된 간찰들도 있다. 그러므로 서로의 안부나 개인적인 용무를 위한 간찰도 있으나, 강우지역 학자들의 학문 활동과 관련된 간찰이 많다. 간찰은 문집에 실리기는 하지만 문집 편집자의 편찬 방향에 따라서 선별되고, 선별된 친필 간찰의 전문을 싣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강우 지역 학자들의 학문 활동을 볼 수 있는 친필 간찰은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러 므로 간찰을 바탕으로 김진호를 중심한 강우 학자들의 교유관계, 학문 활동의 양상, 사회 현실의 인식과 대처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김진호는 혼맥에 의한 교유와 학문 활동에 의한 교유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 히 박치복, 허전, 이진상의 문인이었던 그는 강우 지역 학자들과 폭 넓은 교제 를 가졌는데, 허유․곽종석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상산 김씨 가문은 남인적 성향 을 가졌으나, 혼맥이나 학문 교유 관계에서는 노론과의 교유도 보인다. 학문 활 동은 각종 문집 간행과 강회를 통한 토론 등으로 대별된다. 김진호는 특히 허전 의 저서를 간행․중간하는데 관심을 많이 기울였는데, 그것은 특히 예론에 관심 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 김진호의 성향을 드러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강우 지역 학자들은 19세기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였으나, 강우지역의 공론이 형성되지 않 아 현실 참여에는 적극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서구 사상에 대해서는 성리학 을 통해서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향과 적극적으로 서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경향 등 학자들의 다양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The Sangsan Kim clan has lived in Popmul Village, Sindung Myon, Sanchong County, Kyongnam Province for a long time. The clan has been influential in the area over generations and has spawned a number of officials and scholars. Among these was JinHo Kim, whose nickname was Mulchon. JinHo Kim learned Human Essence and Natural Law (Sungrihak), as well as Rituals (yehak), from such scholars as ChiBok Park, Jon Huh, and JinSang Lee in the 19th century. Archives comprising 1,709 documents, 64.2% of them letters, were found in the possession of the descendants of JinHo Kim. Most letters were addressed to him. Some of them were sent to scholars who lived in UnnakJae (a place that was used to publish SungJaeJip's posthumous writings) and in a private school, YiTaekdang. The contents of the letters include scholarly activities among the literati in the Right Region of the Nakdong River (kangwuhakpa), general greetings, and private matters. Only a small portion of JinHo Kim's letters were published after his death, probably due to the size limitation of books. It is important, therefore, to investigate the original materials. These are classified by such categories as relationships among Right Region scholars, varieties of their scholarly works, and their perception and reactions to the social situation at that time. Friendship among scholars at that time was maintained by scholarly activities and marriage bonds. JinHo Kim was especially close to Yu Huh and JongSok Kwak because they learned from the same teachers. Traditionally, the Sangsan Kim clan identified themselves as Southerners (Namin), but JinHo Kim tried to form some links with Old Doctrine (Noron) through marriages and scholarly activities. Their interests were mainly focused on discussing and publishing on Neoconfucianism. JinHo Kim endeavored to publish and to reedit Jon Huh's works, which directly reflects his concern to practise Family Rites (Yehak). Although they saw the collapsing reality of their society at that time, they could not take part in any form of reformation movement because they failed to get public opinion to reach a consensus. In the meantime, they tried to consolidate tradition but they also never neglected to explore Western Learning (SoH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