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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객사 금릉관의 복원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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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역사학회 (Korean Association of Architectural History)
초록

본 연구는 20세기초 훼철된 강진객사에 대한 복원적 고찰이다. 강진현의 관아건물이 있었던 치소는 1417년 강진현이 도강군과 탐진현이 합하여 강진현이 되었을 당시에는 탐진현의 옛 치소, 현재의 강진군청 자리였던 것으로 보이며, 1429년 도강군 송계리(현, 성전면 수양리 수암마을)로 치소를 잠시 옮겼다 가 1475년 또다시 현재의 군청 자리로 치소를 옮겼다. 1910년 강진현 객사가 일본헌병대 둔소가 되었다는 기록과, 1914년 1월 강진공립보통학교가 객사로 이전되어 수업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사진엽서’에서 강진우편소(1910년 12월 개설)와 강진경찰서(1919년 3월 신설)가 있는 사진으로 보아 1919 년까지도 강진객사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육군참모본부에서 제작한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전남도지부 강진현 편에 ‘관아의 문은 ‘금릉아문(金陵衙門)’ 이고 객사는 동북 방향에 ‘금릉관(金陵館)’이 있으며 남면한다는 내용으로 강진객사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강진객사 금릉관의 규모는 ’조선사진엽서‘를 통해 정청 3칸, 동익헉 7칸, 서익헌 5칸 등 총 15칸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목차
초 록
저자
  • 신웅주(조선대학교 교수)
  • 이재연(강진구청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