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oism’s ‘learning’ during the Xianqin Period
본 논문은 도가는 배움(學)에 대하여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가를 논술하려는 시 도이다. 유가와 달리 도가는 ‘배우지 않을 것을 배워라(學不學)’고 주장한다. 그렇다 면 ‘배우지 않을 것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배우지 않을 것을 배 운다는 것은 無爲의 의미처럼 배운다는 생각 없이 배우는 것, 즉 의도적인 혹은 인 위적인 배움을 배제하는 스스로 그러한 배움을 말한다. 도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 가’는 모든 행동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아가고, 배울 수 없는 지점에서 배움의 지점으 로 넘어가는 지점의 경계를 직감으로 찾아가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 떻게 배울 것인가’는 몸 밖의 것을 버리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취하는(去彼取此) 행 위를 통해 嬰兒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우주 자연과 합일된 坐忘에 이르고, 식은 재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無爲 無我, 中心이 있 는 행동을 통해 생사를 초월하여 도에 머물 수 있는 성인이나 진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無爲를 강조하기 때문에 뿌리로 돌아가고(復歸其根), 영 아로 돌아가며(復歸於嬰兒), 통나무로 돌아가라(復歸於樸)고 말한다. 無我를 주장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따르고 인위적 의도적 행위를 떠나라고 한다. 중심이 있음을 주장하기 때문에 자기 밖의 것을 버리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취하라고 역설 한다.
This thesis is an attempt to discuss what kind of perspective Tao is taking on learning. Unlike Confucianism, Taoism insists on ‘learn what you will not learn’. So, what does it mean to ‘learn what you will not learn’? First, it means learning without the thought of learning, that is, learning by oneself that excludes intentional or artificial learning. In the Tao, ‘what to learn’, it is said that we should learn to find the right point in every action and to find the boundary between the point of inability to learn and the point of learning by intuition. In addition, ‘how to learn’ maintains the same state as an infant through the act of throwing away what is outside the body and taking what is in one’s own body, reaching the Zuowang(坐忘) united with the cosmic nature, and maintaining a mind like ashes. Taoism argues that, through action with a mind and heart, it is possible to reach the state of being a sage who can stay on the status of transcending life and death. Therefore, it is said to return to the roots (復歸其根), return to the infant (復歸於嬰兒), and return to the log (復歸於樸) because it emphasizes the absence of existence. Since Taoism asserts nothingness, it teaches to follow your self-righteousness and avoid intentional actions. As they claim to have a ‘center’, they insist on abandoning what is outside of themselves and taking on what is within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