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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문자는 언어를 기록하는 부호로서 문화의 일부분이고 문화의 발전을 촉진하며, 그 자체가 문화의 산물이다. 서예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문자를 떠날 수 없다. 문자학에서 문자를 연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형태[形]ㆍ소리[音]ㆍ의미[義] 세 가지 영역이다. 여기에서 형태는 바로 서예의 연구 영역이다. 서예는 고대에 ‘서도(書道)’ㆍ‘서학(書學)’ㆍ‘서법(書法)’ㆍ‘서사(書事)’ㆍ‘서세(書勢)’ㆍ‘서장(書狀)’이라 일컬었고, 또한 이를 간단히 ‘書’라 일컫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명칭이든 간에 항상 ‘書’라는 글자가 있었다. 서예는 원래 죽백에 글씨를 쓰고 일을 기록하는 기예를 가리켰다. 이후 서예는 발전 과정에서 서체가 점차 많아지고 기법이 날로 정미해짐에 따라 문자를 서사하는 점과 획, 그리고 기운과 풍신을 나타내며, 작가의 성격ㆍ감정ㆍ취미ㆍ소양ㆍ기질ㆍ사상 등 정신적 요소를 표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예는 이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소도(小道)’ㆍ‘말류(末流)’가 아니라 반대로 이것으로부터 심오한 이치를 탐구하고, 민족성을 알며, 고금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동양문화의 정수라 하겠다. 서예는 문자 중에서도 한자와 가장 좋은 궁합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자와 서예는 동양문화를 표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 하겠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먼저 한자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본 다음 한자서예의 예술관념 변천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에서 한자서예의 서사를 동작ㆍ지각ㆍ인지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서예의 과학적ㆍ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은 한자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서예의 예술관념과 서사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동양의 특수문화 예술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 글을 통하여 전통문화를 선양하고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데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분명 현실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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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치원의 삶과 <진감선사비>의 서예연구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최치원은 12세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討黃巢檄」문으 로 文名을 떨쳐 紫錦魚袋를 하사받고 唐書․藝文志에 수록될 정도 로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894년 귀국 후 時務策 10조를 올려 阿湌 까지 올라갔으나 국세가 기울자 898년에 스스로 불우함을 한탄하고 벼슬에 뜻을 두지 않기로 맹세하며 방랑의 길을 떠났다. 이를 통하여 그가 중국에서 닦은 학문과 재주를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속세에 묻힌 그의 비극적 삶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진감선사비>의 전액과 비문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창 적이고 자유분방한 서체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진감선사비> 를 감상하는 시각이다. 종래에는 이것이 누구의 서체에 가깝고 누구 의 서풍과 닮았다고 하는 것이 감상의 주된 초점이었다. 그러나 전액 과 비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엇과 닮았다는 것은 객관성 확보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것과는 달리 천편일률적으로 판에 박히지 않고 활달하며 자유로운 필치를 나타내고 있다. <진감선사비>가 누구의 서 체와 흡사하다는 것은 시대적 제약이나 그는 결코 개성까지 말살하지 는 않았다. 만약 거꾸로 <진감선사비>를 당나라 서풍과 비교한다면, 아마 당시 유행하였던 모든 서풍이 여기에 융해되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진감선사비>는 당나라의 모든 서풍을 융해시켜 자신의 성정 을 나타낸 새로운 창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핵심이고, 앞으로 한국서단이 주체성을 가지고 중국서예를 어떻게 수 용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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