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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3

        1.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滄浪亭 李尙靖(1725∼1788)삶과 그의 문학에 나타난 정신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조선 후기의 문학이 한창 무르익었던 시대였다. 학문적으로는 義理學과 事理學이 병행하던 때였다. 그가 어렸을 때는 그다지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지는 않았다. 그의 학문 방향은 爲己之學에 있었다. 그가 많은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그가 嶺南 左道와 右道 학자들의 소통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예로 그가 도산서원을 참배하고 그곳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그의 문학에 나타난 정신은 크게 4가지이다. 첫째 큰 국량을 바탕한 追遠精神이다. 그가 선비로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그의 식견이 편협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가문의 전통을 계승하여 집안을 부흥시키려고 하였다. 둘째 經術을 바탕 한 道學精神이다. 그의 학문은 육경에 연원을 두고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知行合一한 道學者였다. 셋째 마음을 바탕 한 義理精神이다. 그가 爲己之學을 바탕으로 義理學 에 전념하였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 正心이 바탕이 된다고 하였다. 넷째 그의 가슴속에는 尊王攘夷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道德的 理想主義의 실행을 바라고 있었다.
        2.
        2012.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조선 중기에 살다간 藍溪 表沿沫(1449, 세종31-1498, 연산군4)의 작품에 나타난 그의 학문자세와 사상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藍溪는 일찍 부모를 여의어 유년기의 그의 삶은 그다지 호화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스승과 좋은 벗들을 만났다. 특히 그가 태어나 24살 2월까지 살았던 咸陽은 그의 꿈과 희망이 깃든 곳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 한창 성리학이 성장할 때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스승은 점필재였고, 서거정은 그의 座主였다.그가 깊이 사귄 친구들은 대부분 점필재의 제자이면서 그와는 동문관계인 사람들이었다. 그 외 그가 관직 생활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있다 寒暄堂과 一蠹가 도학면에만 뛰어났다면, 藍溪는 道學과 文章 두 가지에서 뛰어났다. 그의 「謹次朱子感興」시 20수는 그가 주자학을 구체적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藍溪는 道學과 文章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남계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中庸』에 나오는 ‘尊德性 道問學’이라는 말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다루었다. 그는 고려 말부터 서서히 싹이 트기 시작한 新儒學, 즉 性理學을 보다 깊이 체득하였고, 작품을 통하여 이론화 한 先驅者였다. 實踐 倫理面에서 보면, 藍溪는 春秋史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그의 의식 속에는 正名思想이 녹아 있다. 그는 자신의 心性修養, 즉 存心養性을 통하여 도학을 실천하였다. 그는 明道學, 闢異端의 이론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려 하였다. 그는 현실에 대해 憂患意識이 있었다. 그는 고고한 선비로서 王道政治 통한 道德的 理想主義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뒤의 靜菴 趙光祖의 이상과도 통한다. 그의 삶과 정신이 繼往聖 開來學이라는 말을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 意義를 지닌다.
        3.
        2002.0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Jisujeong is a bower Kim Deug-yeon builds to best of his ability from latter part of his fifties. The building is not merely for pastimes, but for his applying himself to his own study, teaching younger scholars, and carrying on his own life converted to Nature. The reason why he name his building 'Jisu' is as follows; for staying the flowing water, for making his mind clear, not only for the former purposes but for awakening others mind. In addition, it can be said that he reveals implicitly his likings for the mountain and water, and has both wisdom and benevolence. In Jisujeong and Eight famous spots in Jisujeong, he recites the surrounding scenery of his life. The contents of the two poems are the longing for the benevolent wizard's life in the mountain, but indeed his genuine message are the beauty of Nature, and the disinterested living with Nature. Jisujeong and Eight famous spots in Jisujeong, making the relationships and functions of the poet and the persona clear, result in the harmony or unison with natural phenomena. In these poems we can find out, doing away with his ambitions for success or desires for fame, devoting to Nature, his livings free from worldly life for himself to the end. It seems that Ode on Jisujeong has seven features. Firstly, it has a full length. It represents he is a talented literary man. Secondly, the effects of description are in good use. Thirdly, he uses many difficult historical allusions. Fourthly, not a matter of prestiges, his thoughts and deeds, his words and deeds are kept accord with. Fifthly, the feature of describing his feelings has in common with the former Chinese poems. Sixthly, he reveals that he is a manly man, and performs his own natural disposition. Seventhly, listing the characters he has studied and respected, he presents the orientation of his mind. Kim Deug-ueon is both a scholar and a literary man, living from the mid-sixteenth century to the early days in the seventeenth century. Of his works, there remain six hundred Chinese poems, sixty three sijios(three-verse Korean poem), one lyrics, twenty three Chinese proses. Judging from this we are not supposed to fail to notice his value in korean literary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