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라는 용어는 인간과 신, 자연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다. 그것 은 자연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신성을 인식하고자 하며, 이와 같은 의미는 신비적이 고, 초자연적이며 상징적이다. 예이츠는 철학적이고 영적인 표현을 위해 초자연적 요 소들을 활용하였다. 그는 신화적 시와 전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창조하는 수단으로 신비주의를 사용하였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이교 전통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으며, 이는 그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신비주의적 성향에 대한 내면적 욕 망과 맞닿아 있다. 예이츠는 왕권의 신비주의적 책무를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그것을 이교적 자연의 소박한 즐거움과 비교하였다. 그에게 있어 신비로운 저녁은 더 큰 즐거 움을 안겨주는 시간이다. 그는 자연과의 연관을 신비로운 체험, 그리고 이교적 자연 사유와 결부하였다. 예이츠는 자연의 환상성과 초자연성을 위대하고 찬란한 측면으로 받아들였으며, ‘소용돌이치고 방황하는 불꽃’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는 그의 시적 여정 을 위한 신비적 패턴을 제공해주었다.
예이츠의 시적 미학은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수직적이며 열망과 하강을 통해 화해를 분류한다. 형이상학적 고양은 신화적이든 신비적이든 세속적이든 현실에서 출현한다. 예이츠는 주제, 시적 논증, 영적인 의미를 결합한다. 그는 고대 속에서 만물이 조화롭게 통일되고 문화적으로나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영원한 의미를 융합한다. 예이츠는 예술이나 환상적인 영원한 세계에 나타난 완벽한 형태로 지상 생활에서 영혼 요소를 깎아내기 위한 정화의 한 형태로서 물과 화재에 의한 여행을 연관시킨다. 후기 시는 자신의 추상주의가 갖는 영원하고 예술적인 의미로 전환된다.
시는 삶에서 나오는데, 시인의 삶, 정서와 감정의 표현, 상상력의 발전 을 충실히 반영한다. 이 논문은 예이츠와 아우로빈도 고시에 나타난 속세와 영혼의 시 적 패러다임을 비교 분석한다. 예이츠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충실히 표현하고, 마음의 중심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는 또한 삶의 경험과 사랑의 철학을 형성하고, 개인의 지 혜와 사상을 옹호하며 그의 시적 경력의 발전에 대해 사유한다. 이처럼 예이츠의 시는 주관적인 감정, 충동, 신비로운 경험에 기초한 생각과 철학을 드러낸다. 한편 현자 이 자 금욕적이고 신비로운 시인인 아우로빈도 고시는 자신의 초기 생애를 드러내고 후 기의 신비적이고 신비로운 비전을 반영한다. 그의 시는 요가 사다나(Yogic Sadhana) 또는 명상에 의해 심화된 이 영적, 신비로운 비전을 표현한다. 두 시인은 각자의 시에 서 시적 패턴에 대한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 방식에서는 차이점을 보인다. 예이 츠의 시가 비교, 신비주의, 환상 및 황홀경을 중심으로 자전적 주제를 드러냈다면, 아 우로빈도 고시의 시는 정신계에서 은유적이고 형이상학적 경험을 주로 표현한다.
예이츠와 아우로빈도 고시의 작품은 삶의 후반기에 시를 위한 여러 해의 주제, 출처 및 구조로 남아 있었다. 예이츠는 마지막 시기까지 시적 위대함을 추구 했고 아우로빈도 고시는 초의식과 합쳐질 때까지 서사시를 쓰고 영혼의 변화, 영혼의 여정에 대해 몰두했다. 예이츠의 『환상록』은 달의 28위상과 인간 마음과 문명의 원리를 나타낸 기하학적 상징이며, 아우로빈도 고시의 『성스러운 생명』은 영적 진화, 초심적 의식을 향한 초인간적인 분투의 두 방법을 사용하여 물질을 통한 마음의 고양, 초월적 마음, 초의식, ‘존재, 의식, 행복’로의 고양을 추구한다. 예이츠의 철학서 『환상록』은 탁월한 시적 성취를 위한 신화 체계이라면 아우로빈도 고시의 『성스러운 생명』은 궁극적인 현실을 달성하기 위한 미로이다. 삶은 계속되고, 인간이 죽을 때 삶이 성장 하기 위해 호흡이 필요하고, 육체의 기관은 삶을 위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고, 육체의 기능이 상실될 때 삶은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