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초기 산수화단을 대표하던 “淸初六家”의 한사람인 吳漁山은 康熙 27년(1688) 8월 1 일 사제품에 오른 후 선종 때까지 약 30년간 江南地域 선교사업에 종사하였다. 그의 선교활 동은 크게 上海에서 보좌신부로서 생활하던 시기와 嘉定에서 본당신부로 활동 하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三餘集』은 오어산 신부가 강남지역에서 修道生活, 司牧生活, 敎導生活을 하는 여가에 지은 광의의 天學詩들을 수록한 것이다. 陳垣 선생은 오어산 신부의 선교 생애를 ‘窮’과 ‘忙’으로 개괄하였는데, 연구자는 여기에 ‘愁’를 더하여 오어산 신부의 삶과 고민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三餘集』에 수록된 시를 통해 보면 오어산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라틴어와 교리에 대한 학습 의지를 접지 않았고, 목자로서 사목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바쁜 나날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 속의 영웅과 고사 들을 인용하여 기독교 교리를 알리고자 하였다. 본문에서는 오어산 신부가 『三餘集』에 남긴 천학시들을 修道詩, 司牧詩, 敎導詩로 나누고, 이상의 내용들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1688년 57세의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고 上海에서 10년간 선교활동(‘十年海上’) 을 수행한 예수회 신부 오어산의 삶을 통해 동질적인 가치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가톨릭과 유 교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고유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해결하고, 두 문화를 융합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오어산의 三餘集 속에 수록된 시 가운데 상해에서 창작한 기독교문화와 예수회 신부들의 활동을 담아낸 광의의 天學詩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본문에서는 먼저 상해지역의 기독교 전교기지였던 老天主堂을 중심으로 한 예수회 오어산 신부의 생활을 살펴보고, 예수회원의 중국 선교활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 당했던 서양의 천문학과 자연과학지식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예수 회 신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바티칸 포교성의 지휘와 감독을 받게 된 중국 지식인의 글로벌한 종교 활동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어산 신부가 상해지역의 선교활동에서 보여준 목자로서의 노력,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자 한 선교사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기독교와 중국 고유문화를 융합하고자 노력한 예수회 신부 오어산의 사목활동이 갖는 로컬적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天學詩란 명말 청초 중국 고전시가의 형식을 빌려 천주교의 교리와 전례 등에 관련한 내 용을 담아낸 시를 이르는 말로, 청나라 초기 중국인 예수회 신부 吳漁山이 처음 사용하였다. 오어산은 ‘淸初六大家’의 한 사람으로 화가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지천명의 나이로 ‘聖名之城’ 이라 불린 마카오의 성 바오로학원에서 예수회 수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특이한 인물이 다. 『三巴集』은 성 바오로학원에서 생활하던 오어산이 해항도시 마카오의 자연·인문환경을 노래한 『澳中雜詠』과 새롭게 학습한 기독교의 교리와 전례, 그리고 그가 속했던 예수회의 규 율과 성인들을 송찬한 시를 모은 『聖學詩』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에서는 『澳中雜 詠』에 나타난 천학시와 함께 『聖學詩』에 수록된 천학시를 교리시, 전례시, 송찬시 세 부분으 로 나누어 분석하고 중국고전문학에서 천학시가 갖는 의의와 함께 해양을 통한 동서양 인문 학의 교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